[시시비비]임영웅만 영웅인 나라

영웅에 인색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 이념, 정치 갈등을 크게 일으키지 않고 남녀노소 '영웅'(Hero)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광화문광장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대 호국영웅 안중근 의사 등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한국은 영웅 만들기에 인색하다. 서방 국가들과 비교해 역사가 짧고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거치며 이념, 정치 갈등이 동반됐기 때문에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쪽에서 영웅이라 불릴 만해도 다른 쪽에서는 빌런이 되는 반 쪽 영웅이 대부분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현재 한국에서 영웅과 빌런 사이 그 어디쯤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와 위인전에도 등장은 하지만 초대 대통령이라는 것 외에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독재, 부패 내용이 대부분이다. 정치권에서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이 된 여러 업적이 있지만 정치적 과오만 부각된 역사"라고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계기로 여권 중심의 이승만 재평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분위기를 타고 서울시는 경복궁 옆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검토 중이다. 역사적인 인물은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인데, 기념관을 통해 이를 균형 있게 객관적 시각에서 다뤄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건립추진위 주장이다. 그러나 진통은 심하다. '이승만 미화' '역사 왜곡' 논란이 거세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과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대통령이 '영웅'으로 불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지만 유신독재의 과오로 영웅으로 불리지 못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지만 사람들마다 평가가 엇갈려 영웅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한국에서 영웅이 나오기는 힘들다. 그나마 감옥에 안 가는 대통령이 나오면 다행이다. 시쳇말로 '국뽕'이라 지칭되는 지나친 애국주의적 ·민족주의적 감성도 위험하지만 영웅화가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는 문제다. 영웅에 인색한 만큼 우리가 걸어온 역사뿐 아니라 현재에 대한 자부심도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젊은 층에서 '헬조선' 같은 극단적인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이런 의미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치색 짙은 영화들이 반갑다. 이를 둘러싼 격한 논쟁도 반길만하다. 적어도 영화라는 국민 접점이 넓은 매개체를 통해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기회가 주어졌다. 특히 역사가 비인기 과목으로 전락한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층에는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기회다.

해석은 관객 몫이다. 의도적으로 정치색을 입힌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국민 의식 수준이 낮지 않다. 다양한 시각으로 정치와 역사를 재조명한 더 많은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슈1팀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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