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기자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대대적 기념행사가 예고된 가운데,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큰 난관에 봉착했다. 기념전시에 참여하는 30여명의 작가 작품의 해상 운송길이 막힌 것이다.
통상 국내에서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하는 작품 운송은 선박을 통해 수에즈운하를 거쳐 이동하는 경로를 이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7일 촉발된 가자 전쟁 여파로 예멘의 친이란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에즈운하로 이어지는 홍해 남쪽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을 공격하면서 해운사들이 해당 경로를 피해 우회경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기간과 비용 모두 늘어났다는 점이다. 당초 예술위는 해당 전시 운송 비용으로 총 2억2000만원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전한 작품 운송을 위해서 항공 운송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비용이 세배 가까이 치솟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특별할인가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병국 위원장이 지원을 요청했고 대한항공이 문화예술 지원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국내 작가 작품의 해외 전시, 또는 해외 유명 작가의 국내 특별전을 위해 바다 위를 오가는 ‘귀하신 몸’ 미술 작품들의 운송에는 거대기업 기업 CEO의 출장 못지않은 비용이 든다. 유명 예술품들은 극빈급 의전을 받는다.
지난 2021년 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의 작품 110점의 운송에는 귀빈 이상의 보호와 특수 항공 기술이 적용됐다. 4회에 걸쳐 진행된 당시 작품 운송에는 충격 최소화를 위한 장치와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여기에 도난 등 비상 상황을 대비한 보안 시스템이 투입됐다.
대한항공은 당시 작품에 미치는 작은 충격도 줄이기 위해 항공기를 가장 가까운 주기장에 배치해 지상 이동을 최소화했다. 공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도 작품 변형이나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항온·항습 기능을 갖춘 무진동 차량을 썼다. 무장 경호 차량이 무진동 차량을 호위했다. 공항에서 화물 보안 검색 과정을 거쳐 항공 운송용 탑재용기인 팔레트나 컨테이너에 안전하게 적재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술품들이 통관절차를 마치고 항공기에 탑재되면 그 내역은 그대로 기장에게 통보된다. 비행 중에는 기내 온도와 습도를 최적으로 맞추고, 고가의 작품인 만큼 큐레이터도 동승해 운송 과정을 직접 관찰했다. 여기에 출발·도착지 간 화물 정보를 구글 워크스페이스 등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등 화물사업을 통해 쌓은 회사의 노하우가 총동원됐다.
피카소 작품 운송은 수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 때문에 첨단 기술이 적용된 특수 사례다. 최근 글로벌 물류비 상승으로 미술품 항공 운송 비용이 늘어나자 일반 갤러리와 컬렉터들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일부 컬렉터들은 운송비 절감을 위해 액자를 떼어내고 캔버스만 말아서 완충재와 함께 통에 넣어 작품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종이 포장의 경우 작품 훼손이 불가피해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경우도 빈번히 발생했다.
한 컬렉터는 해외에서 매입한 작품 운송 과정에서 작품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상자인 크레이트(Crate) 포장 후 한국으로 보냈는데 2kg 작품이 포장으로 인해 총 25kg으로 배송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품가는 1000만원인데 배송비만 400만원을 지불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고 컬렉터는 설명했다.
국내 운송도 이동 거리가 짧아졌을 뿐 까다로운 과정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품 거래가 빈번한 옥션의 경우 위탁자로부터 작품을 인수하는 순간부터 경매 무대에 오른 뒤 낙찰을 거쳐 구매자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에 작품관리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국내 옥션 작품관리팀 관계자는 면 또는 유산지나 중성지로 그림을 감싼 뒤 통풍이 원활한 골판지로 한 차례 더 포장해 나무 상자 안에 넣어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통상 1차 작업이며, 경매 전에는 가벼운 복원 작업과 액자 교체 등도 함께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경매 낙찰부터 구매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포장해 인도하는 과정은 중간중간 전시 등 변수의 연속으로 특히 고가의 작품은 보다 철저한 보안 과정을 거친다고 덧붙였다.
육로 운송에는 무진동차량이 동원된다. 엄밀히 말하면 저진동차인 수송차량은 바퀴축과 적재함 사이에 특별한 서스펜션(완충장치)을 장착해 노면에서 오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일반 차량은 완충장치로 강 코일 또는 겹강판 서스펜션을 쓰는데, 무진동차는 타이어처럼 생긴 고무풍선인 에어서스펜션을 달았다. 이를 통해 무진동차에서 느끼는 충격은 일반차량의 30~55% 정도에 그친다. 통상 상하충격만 흡수하는 일반차량과 달리 무진동차는 코너링 때 발생하는 좌우충격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어 1990년대부터 미술품 운송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다르지만, 서울 시내 5t 윙바디 무진동차량 이동의 경우 1회 운송에 통상 2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한편, 이런 시장의 흐름과 더불어 최근 미술시장의 성장세에 발맞춰 미술 물류사업에 뛰어든 인천공항은 작품 이동과 보관을 최적화한 수장고를 2026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항공기까지 최소 거리로 운송할 수 있고, 한국이 보유한 최첨단 수장고 건설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개장도 전에 벌써 작품이 50% 이상 차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