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2020년 1월 3일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황교안 대표는 제21대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한다고 공언했다. 황 대표가 밝힌 수도권 험지가 어디냐를 놓고 다양한 추측이 이어졌다. 결국 황 대표가 선택한 수도권 험지는 서울 종로였다.
최근 부산 3선 의원 출신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험지 출마를 공언한 뒤 서울 종로 출마 의사를 밝힌 것과 유사한 장면이다. 보수정치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수도권 험지 출마를 공언한 뒤 종로에 출사표를 던지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종로는 총선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험지 출마론의 대상지로 지목되기도 하고, 왜 종로가 험지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0년 황교안 대표가 종로 출마를 선언했을 때 당내에서는 “종로가 험지가 맞느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선거에서 종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험지보다는 ‘정치 1번지’다. 청와대가 서울 종로에 있기에 정치 1번지로 불리기도 한다.
종로에는 청와대는 물론이고, 정부서울청사도 있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 총리 관저도 모두 종로에 있었다. 종로 국회의원의 위상은 300명 중의 1명이 아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누구나 한 번쯤 종로 국회의원 출마를 고민할 정도다.
종로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노무현 그리고 정치인 이명박은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종로의 정치1번지 상징성도 예전보다 많이 약화했다. 대통령실이 종로에서 용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청와대의 상징성이 퇴색된 탓이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모두 용산에 있다.
종로 출신 국회의원이 대통령에 오른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속설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종로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으로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시기는 2007년으로 16년 전이다. 그 이후에도 종로 국회의원은 계속 배출됐지만,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정부서울청사도 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위상이 약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종로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국회의원과 다르다. 내년 4월 제22대 총선 역시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의 종로 출마설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로의 또 다른 수식어인 험지는 어디까지가 맞는 말일까. 종로는 정말 보수정당의 험지로 봐야 할까.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따로 뽑기 시작한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2020년 제21대 총선까지 당선자를 확인해보면 의문이 풀릴 수 있다.
제13대 총선은 민주정의당 이종찬 후보가 당선됐고, 제14대 총선도 민주자유당 이종찬 후보가 당선됐다. 제15대 총선은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제16대 총선은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가 당선됐다. 제17대 총선은 한나라당 박진 후보, 제18대 총선도 한나라당 박진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국민의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정당이 모두 종로의 승자가 됐다.
하지만 제19대 총선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 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 제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 등 최근 세 번의 총선에서는 연속으로 민주당 계열 후보가 당선됐다.
그렇다면 종합 전적은 어떻게 될까. 보수정당의 종로 총선 전적은 1988년 이후 6승 3패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정세균, 이낙연 등 민주당의 종로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풍부한 국정 경험이 있는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최선의 카드를 종로에 내놓았을 때 보수정당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시 대선주자급 정치인을 차출한다면 국민의힘이 종로 선거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대진표가 어떻게 짜여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근 선거 결과는 어떨까. 최근 종로에서 열렸던 주요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해 3월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50.6%로 승리했고, 6월 지방선거에서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9.1%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 곳이다.
종로의 선거 역사를 되짚어본 볼 때 보수정당의 험지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