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짬짜면과 짜파구리는 유명한 '하이브리드 요리'다. 사실 '퓨전 요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지만 '하이브리드(hybrid) 근무'를 설명하기 위해 퓨전과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단어를 적용해봤다. 두 음식이 합쳐져 하나의 메뉴가 됐다는 점에서 퓨전요리도, 하이브리드 요리도 크게 의미가 달라지진 않을 듯싶다.
그렇다면 이번엔 짬짜면과 짜파구리의 차이를 생각해보려 한다. 짬짜면은 달콤짭짤한 짜장면과 매콤시원한 짬뽕을 각각 즐길 수 있지만, 짜파구리는 짜장면 맛의 짜파게티와 짭짤 매콤한 라면 너구리가 섞여 마치 사천 짜장과 같은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 각각이 본연의 맛을 고수하느냐, 또 결합을 통해 새로운 맛으로 재창조되느냐 하는 점에서 두 요리는 엄연히 다르다. 짬짜면 그릇은 두 음식 사이에 칸막이가 있지만, 짜파구리는 한 접시에 놓인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짬짜면과 짜파구리 중 어디에 해당할까. 현시점에서 짬짜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이라는 두 근무 공간을 일주일이라는 근무 기간에 나눠서 붙이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두 근무 형태를 조합해 완전한 하나의 근무 형태로 만들어냈다기에는 아직 칸막이가 여러 군데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 근무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요리로 적절히 융합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짜파구리만큼 찰떡같이 결합해 성공적인 하나의 맛을 내려면 여러 실험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사무실 출근 일수다. 전사 직원에 이 근무 제도를 일괄 적용하는 경우 근무일 중 사무실로 출근할 일수를 고정해 발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즈니는 주 5일 중 4일, 아마존과 스타벅스는 3일이다. 현재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 대부분은 전면 재택근무를 하다가 생산성과 협력 등을 이유로 현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아 주 1일에서 2일, 3일로 점차 사무실 출근 일수를 늘려가곤 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주 5일 근무일 중 며칠을 사무실에 나와 있는 것이 적합할까. 이 문제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하이브리드 근무 일정을 돕는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스쿱이 미국 내 하이브리드 근무 도입 334개 업체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 5일 중 최소 3일을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46%로 가장 많았고, 2일이 41%로 뒤를 이었다고 한다. 주 1일과 4일은 각각 7%, 5%로 집계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를 평균 내면 2.49일로, 전체 근무일의 딱 절반이다. 근무 일수로 보면 마치 짜 맞춘 듯 두 시스템이 정확히 반반 합쳐진 모습이다.
사무실 복귀 문제를 놓고 회사와 직원 간의 갈등이 첨예한 만큼 선호하는 주중 재택근무 일수에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비영리 연구단체 WFH리서치가 미국의 임직원 20만명을 조사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은 주 5일 중 2.73일(지난 2월 기준) 원했지만, 고용주들은 2.20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에만 해도 고용주는 일주일 중 2일도 채 재택근무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마음이 서서히 바뀌었고, 2021년 10월 조사에서부터 2일을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직원들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2.5일 이상을 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경영진과 직원들의 견해차는 2021년 1월 1.38일에서 현재 0.5일까지 좁혀졌다.
사무실 출근 일수도 문제지만 무슨 요일에 나오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주말을 마치고 월요일에 출근하기 싫어하는 증상을 두고 '월요병'이라고 할 정도로 요일은 직원들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준다.
현재로서는 화·수·목요일이 대세다. 재택근무 연구를 20년 가까이 해온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화·수·목요일 사무실 출근 조합을 두고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가장 많이 찾는 '플레인 바닐라 버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주말과 붙어 있는 금요일에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경우는 6%에 불과해 화요일(72%)이나 수요일(66%)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대세가 정답은 아니다. 실험 단계에 돌입한 기업들이 경영진과 직원의 요구사항을 절충해 내놓은 답이다. 생산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이러한 조합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진 지켜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근무일 중 일부를 고정해 사무실로 출근하게끔 하는 행위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 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하나의 근무 체계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업무에 맞는 근무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주변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력을 높여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10명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위해 회의를 해야 한다면 회의실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토론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업무와 근무 공간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져야 극강의 효율성을 끌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복합적이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조나단 트레버 옥스퍼드대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경영저널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에 공개한 글에서 글로벌 기업 20곳의 경영진을 인터뷰한 결과 업무가 총 네 가지로 분류된다고 봤다.
<i>①책자를 디자인하는 식으로 혼자 집중해서 창의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업무</i>
<i>②데이터 입력처럼 개인이 절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업무</i>
<i>③일상적인 프로젝트처럼 협업이 필요한 단체 업무</i>
<i>④제품 개발처럼 모두가 협력해 창의력을 동원해야 하는 업무</i>
트레버 교수는 ①번이 협업할 일이 적고 기술력으로 지원이 가능해 네 가지 업무 중 가장 화상으로 전환하기 유리한 업무라고 평가했다. 반면 ④번은 팀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지식과 의견을 가감 없이 쏟아내고 집단 지성을 모아야 하는 만큼 이러한 업무가 많다면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 직원 주 X일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식의 일괄 적용보다는 '부바부(부서 by 부서)', '팀바팀(team by team)'으로 하이브리드 근무 제도 세부 내용 결정권을 넘겨주는 경우도 꽤 많다. 두 용어 모두 '그때그때의'라는 의미의 영어 형용사 표현인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에서 나온 말이다. 각 부서와 팀의 특성에 따라 직원들이 주로 해야 하는 업무 특성을 보고 하이브리드 근무 시스템도 직접 또는 회사에서 구성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국내 대표 IT 기업 카카오도 3월부터 사무실 출근을 우선하는 '카카오 온(ON)'을 도입하고 조직별로 재택-사무실 출근 일수를 결정해 제출하도록 한 상태다. 미국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은 최근 사무실 복귀를 지시하면서 직원의 역할 구분을 ▲주 5일 사무실 출근 필요 ▲유연 근무 가능 ▲재택근무 적합 등 세 가지로 나눠 회사가 30일 이내에 고지하겠다고 밝혔다고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보도하기도 했다.
업무를 구분하고 팀별로 적용 시스템을 달리하면서 하이브리드 근무제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떤 방식이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은지는 아직 또렷하게 나온 것이 없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팀이나 업무에 따라 차이를 둘 경우 직원들 사이에서 형평성 관련 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사무실 복귀를 거부하며 재택근무를 일종의 혜택으로 느끼는 직원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돼 전체적인 조직 문화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또 사무실로 출근하더라도 팀이나 부서마다 서로 체계가 엇갈리면서 정작 협업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마틴 하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지난 1월 관리자급과 직원들이 하이브리드 근무라는 '뉴노멀'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회사 안에서 재택근무를 하지 못하는 팀이 존재할 때 이와 관련한 공정성 문제 등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하스 교수는 기업들이 각자의 사업에 적합한 맞춤형 정책을 만들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