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기자
2일 서울고법 5층의 한 민사 재판 법정에서 재판장과 원고 변호사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더이상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재판장은 이달 말 변론기일을 다시 열자고 했다. 이에 원고 변호사는 "피고 측에서 새 주장을 하는 것 같은데, (시스템 오류로) 관련 내용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재판장은 결국 이보다 약 한 달을 더 늦춰 내달 변론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법원의 전자소송시스템 개편 작업이 지연되면서, 각 사건 재판 당사자들이 사건의 주요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현재 우리나라 민사 사건은 전부 전자소송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날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재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들이 속출한 것이다. 자신의 사건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나의 사건검색' 시스템 등도 "시스템 작업 안내" 문구와 함께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당초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8일 오후 8시부터 이날 오전 4시까지 법원 전산체계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안전성과 정확성을 위해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 작동을 중단시킨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됐다. 1일 수원회생법원과 부산회생법원 개원에 맞춰 전체 데이터 7억여건을 신설 데이터베이스로 이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스템 오류와 방대한 데이터양으로 예정 시간 안에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국 법원 누리집 사건 검색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재판 당사자들의 기록 제출과 열람, 일정 확인 등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날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김상환 처장 명의로 공지문을 내고 "오늘 중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의 정상적인 사용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일단 이관을 멈추고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을 재가동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데이터에 인덱스를 추가하는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을 이용하는 국민에 큰 불편을 끼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스템이 복구될 것이라던 법원행정처 설명한 것과 달리, 오후 4시 현재까지도 나의 사건검색 시스템 등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민사 재판에 본격적으로 전자소송이 도입된 것은 2011년부터다. 기존 종이 기록에 따른 단순·반복 업무를 줄이고,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법원행정처는 사법절차의 전자화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해왔다. 형사사건도 2024년부터 종이 서류가 필요 없는 전자소송으로 전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