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잡는 심리분석]②'거짓말탐지기' 체험… 발가락에 힘줘도 못 피했다

본지 기자, '거짓말탐지기·뇌파검사' 등 직접 체험
검사 결과 '조작 속설'도 발각… 검사 장비 못 속여

피의자의 거짓 진술을 거짓말탐지기와 뇌파검사 등 심리분석으로 잡아낼 수 있을까. 심리적인 동요가 거의 없는 강심장은 거짓말탐지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탐지기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한 조사는 일상이 됐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아직 명확한 물적 증거가 아닌 거짓말탐지기 등 심리분석 도구로 범죄 혐의를 특정하는 것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방철 대검찰청 심리분석실장(왼쪽)이 대검찰청 심리분석실에서 허경준 기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 실험을 시연하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아시아경제 기자는 거짓말탐지기의 신뢰도에 대한 의심을 하면서 지난 13일 대검찰청 심리분석실을 방문해 거짓말탐지기와 뇌파검사를 체험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대검이 자랑하는 심리분석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 장비는 의외로 단출했다. 모니터 두 대가 놓인 책상 앞에 여러 가닥의 선으로 연결된 검은색 가죽 의자와 그 맞은편 벽에 설치된 CCTV가 전부였다. 의자에 앉자마자 가슴과 복부를 압박하는 두 개의 줄이 채워졌다. 왼쪽 손 검지와 중지, 약지에도 클립 형태의 센서를 착용했다. 오른쪽 팔에는 혈압 측정기와 유사한 모양의 장비가 끼워졌다. 몸에 설치된 장비를 바라보니 신체의 모든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위용을 뽐내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남자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OOO이 맞습니까" 평범하고 당연한 질문이 몇 차례 반복되고 "네"라고 대답했을 때 맥박을 표시하는 그래프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방철 대검 심리분석실장은 "지금부터 하는 질문에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해보세요"라고 안내했다.

"당신은 결혼을 했습니까"(검사관) "아니오"(기자)

거짓말탐지기 등 심리분석을 활용해 범인을 검거하는 극적인 장면은 수사기관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갑자기 사실과 다른 대답을 하자 호흡이나 맥박이 빨라진 것도 아닌데, 그래프가 요동을 쳤다. 거짓을 말하라고 미리 알려줬음에도 갑자기 거짓말을 하니 압박감이 상당했다. 불시에 기습을 당한 것 같아 거짓말탐지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방법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신체 자극을 주면 검사 결과가 틀릴 수 있다고 하던데요"(기자) "한 번 해보세요"(검사관)

영화에서 본대로 질문에 거짓을 말하는 순간 항문에 힘을 줬다. 그런데 그래프가 항문에 힘을 준 그 시점에 정확히 솟구쳤다가 내려갔다. 의자에 조사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이상반응이 그래프에 그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아무런 장비가 장착되지 않은 발가락을 움직여 자극을 줘봤지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정면에 설치된 CCTV에 그대로 드러나 발각됐다.

대검찰청 심리검사실의 뇌파 검사 장비.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무기력하게 당한 뒤, 뇌파검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뇌파검사실은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는 코인노래방 정도 크기에 의자와 책상, 책상 위에 올려진 여러 개의 버튼과 맞은편에 자리한 모니터가 전부였다. 1억원을 호가하는 뇌파검사장비치고는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검사를 위해 안면부를 제외하고 머리 전체를 감싼 수십 가닥의 줄이 연결된 머리 보호대 같은 장비를 착용했다.

훔친 물건을 특정하는 검사를 체험했는데, 훔치지 않은 물건 사진이 여러 장 제시되고 중간에 실제 절도했던 물품이 나타났을 때 뇌파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검은색 지갑을 훔쳤다고 가정하고 검은색 지갑이 화면에 나타날 때 다른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검사관)

다른 지갑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면 A버튼, 검은색 지갑이 나타나면 B버튼을 누르면 되는 단순한 원리였다.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는 방식의 검사가 끝이 났고 통계가 기록된 그래프는 하나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다른 색깔의 지갑에서는 뇌파가 일정한 패턴을 보이다가 검은색 지갑이 나타났을 때만 눈에 띄게 그래프가 상승하고 있었다. 검사관은 실제 검사는 최소 60차례에 걸쳐 같은 화면을 보여주고 범행과 연관이 있는 물건을 특정하는데, 검사가 반복되면 평균 그래프값이 나오고 반응이 일정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같은 통합심리분석을 통해 광명 세모자 살인사건,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 택시 기사·동거녀 살인사건 등 주요 강력 사건을 해결했다.

사회부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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