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MVP보다 MIP에게 더 큰 박수를

지난 2010년 미국 한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있었다.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시상식 차례가 왔다. 미술을 가장 잘한 학생, 체육을 제일 잘한 학생…. 드디어 모든 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에게 교장 선생님이 MVP 상을 줄 때 슬슬 자리를 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다음 상을 받을 학생 소개를 시작했다.

"처음엔 읽지도, 쓰지도 못했어요. 아예 영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친구들과 이야기도 잘하고 작문 숙제도 합니다." 친구들이 한 학생에게 ‘너다, 너’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호명하자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MVP보다 더 소리가 컸다. 한국에선 못 보던 광경이었다. 미국 대부분 학교에선 가장 뛰어난 MVP와 함께 MIP(Most Improved Person)를 선정해 상을 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보통 한국 사람은 MVP 이외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MIP라는 게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상을 받은 친구가 우리 아들이었기 때문에 MIP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봤다. 영어 과외, 학원을 경험하지 않고 미국에 간 초등학생은 처음 거의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 그걸 극복하는 과정은 꽤 험난했다.

미국에선 승자독식 현상이 가장 강한 프로 스포츠계에도 MIP가 있다. NBA는 1985년부터 그해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에게 MIP상을 준다. 학생에게 MIP는 MVP 못지않은 영예인 동시에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력이다. MIP상을 받았다고 자기소개서에 적으면 대부분의 상급교육 기관 평가자들이 큰 가산점을 준다. MVP 부럽지 않다.

학생을 선발할 때 얼마나 똑똑한 학생인가를 제일 먼저 본다. 하지만 노력해서 밑바닥에서 위로 치고 올라간 경험도 그와 맞먹는 대우를 받는다. 미국뿐 아니라 주요 국가 대부분이 그렇다. 한국에선 요즘 평가절하 중인 ‘노오력’이 해외에선 여전히 큰 가치를 지닌다. 아시아경제에서 시가총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조사했다. 이 가운데 9명이 전문계고(옛 실업계고) 출신이었다. 쉽게 말해 상고, 공고, 농고를 나온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9명이란 이야기다. 인문계고를 졸업한 뒤 대학 대신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도 1명 있었다.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라면 경제계의 MVP다. 동시에 이들은 경제계의 MIP다.

문제는 자신이 MIP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CEO 가운데 한명이 학력을 밝히는데 난색을 보였다. 밑바닥에서 노력해 위로 치고 올라간 사람을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양향자 의원이 그랬다. 여상을 졸업한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 임원이 탄생했다는 기사를 처음 썼을 때 양 의원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학력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을 겪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입지전을 쓴 인물이란 찬사와 지지에 힘입어 국회의원으로 맹활약중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줄곧 1등을 해온 모범생에게 박수를 보내자. 하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밑바닥에서 노력해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산업IT부 백강녕 young100@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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