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증권사의 ‘사과할 결심’…과거 기반 전망의 한계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최근 기자가 만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게 지난해 빗나간 전망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의 장기화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지수 전망은 한참 빗나갔다. 결과적으로 '코스피 3600'이라는 터무니없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고, 시장 상황에 따라 이를 수정·보완하느라 뒷북치기에 바빴다.

그들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하지만, 부끄러움을 직접 마주한 용기 있는 증권사는 드물었다. 이례적으로 신영증권 리서치센터가 김학균 센터장과 9명의 연구원 이름으로 '2022년 나의 실수'라는 제목의 반성 리포트를 냈다. 32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반성문에서 김학균 센터장은 "때로는 맞히고, 때로는 틀리는 게 애널리스트의 일이지만, 지나간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의 전망을 잘할 수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3가지 실수를 언급했다. 우선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점도 꼽았다. 마지막으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억제뿐만 아니라 금융 안정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점을 들었다.

김학균 센터장은 시장을 보수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코스피의 추가 하락을 경계하며 투자자들에게 신중한 접근을 조언했다. 이런 김 센터장과 달리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을 내놨던 몇몇 증권사는 오히려 사과할 결심이 서지 않았는지 아무말도 없었다.

새해는 밝았고 어김없이 각 리서치센터에서 1년 지수 전망 리포트를 쏟아냈다. '상저하고' '상고하저' 등 예상은 엇갈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코스피는 지난해 연저점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급락한 후 다시 반등하는 등 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코스피가 반등세를 보이기 전까지 10대 증권사 리서치센터 중 보수적으로 내다본 대신증권(코스피 하단 2050), 삼성증권(2000), 신한투자증권(2000), 하나증권(2050), 한국투자증권(2000)의 저점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더구나 4분기 실적 어닝쇼크, 경기 침체 가속화 공포 탓에 코스피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Fed의 긴축 의지는 강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수준에 따라 정책 방향이 어떻게 바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위원 4명이 교체된다. FOMC 위원은 총 19명이며, 이 중 투표권을 가진 위원은 12명이다. 새로 투표권을 갖는 4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총재는 패트릭 하커(필라델피아), 로리 K. 로건(댈러스), 닐 카시카리(미니애폴리스), 찰스 에반스(시카고)다. 이 중 매파적 성향을 가진 위원은 닐 카시카리 총재다. 패트릭 하커와 로리 K. 로건 총재는 중립, 에반스 총재는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전반적으로 올해 투표권 멤버는 덜 매파적으로 바뀐다.

이런 가운데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그런데 월가에서는 파월 의장의 발언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Fed가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1년 중 가장 중요한 업무로 여기며 심혈을 기울여 내놓는 게 바로 지수 전망이다. 다만 다양한 변수로 가득한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인간(애널리트스트)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히 섣불리 예측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Fed 정책에 주목해 섣불리 예단하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지난해 전망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과거의 오판을 반성해야 분석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 반성이 면죄부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반성에 인색하던 곳에서 반성이 나온 것만으로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거 사례에 기반한 전망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전한 신영증권 애널리스트의 반성이 밑거름이 되어 변수로 가득한 시장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 개인 투자자의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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