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K칩스법과 영혼 없는 기재부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대통령 지적에 바로 (반도체 세액공제율) 검토를 시작했다.”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인천공항 대한항공 제1화물터미널을 찾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대기업에 대한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8%에서 1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이번 주 내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높인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K-칩스법)'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문턱을 넘은 지 8일 만이다.

당초 8%의 세액공제율은 기재부 입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는 세액공제율을 20%로 높이자고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세액공제율을 10%로 제시했지만 기재부는 정부안(8%)을 강력하게 고수했다.

기재부가 8%의 세액공제율을 고집한 건 세수 급감을 우려해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여당 안(20%)을 토대로 향후 세수 감소액을 추계한 결과 당장 2024년부터 국세 수입은 2조6970억원 줄어든다. 2026년에는 세수 감소액이 4조4094억원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대통령 한 마디에 기류가 바뀌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참모회의에서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상 기재부에 대한 질책성 지시라는 분석이다. 추 부총리는 ‘불호령’이 내린 지 이틀 만에 세액공제율을 두 자릿수로 높이는 K-칩스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8%의 세액공제율을 ‘판단 미스’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라곳간 파수꾼인 기재부 입장에선 반도체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최근 5년새 400조원 이상 불어난 국가채무를 줄여야 할 책임도 있다. 국가재정 건전화는 윤석열 정부 핵심 기조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통령 한 마디에 180도 바뀐 기재부 입장이다. 8%의 세액공제율은 기재부 재무관료들의 분석을 종합한 결과다. 기재부는 지난달 24일 공식 설명자료를 내고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이 대만 등 주요국에 비해 낮다는 지적에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세액공제율을 두 자릿수로 높이는 건 경제계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 지시 이틀 만에 내부 결론을 뒤집은 기재부 판단을 ‘정무적 감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영혼 없는 관료’에 대해서는 씁쓸함이 남는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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