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성보험부터 차보험료까지…당국 압박에 불편한 보험업계

당정 재차 압박에 자동차보험료 인하
'만년 적자'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도 제한
'관치' 우려 vs 민생 위한 적절한 개입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압박에 보험업계가 서둘러 자동차보험료를 내리고 실손의료보험료 인상률을 낮췄다. 고물가시대 민생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저축성 보험 금리 경쟁 자제부터 이번 보험료 인하 압박까지 간섭이 지나친 '관치'가 아니냐는 아쉬움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시장과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 '컨트롤타워' 역할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 등은 전날 개인용 자동차보험료를 2.0%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메리츠화재와 롯데손해보험도 각각 2.5%, 2.9%씩 내리겠다고 밝혔다. 다른 손해보험사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줄줄이 자동차보험료 인하를 단행할 전망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민생지원을 내세우며 재차 압박하자 서둘러 연내 인하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당정은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여유가 있는 만큼 대승적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손해율은 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사가 받은 전체 보험료 대비 지급하는 보험금 비율이다. 통상 자동차보험은 손해율 80%대 초반이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졌다. 당정은주요 손보사의 자동차 보험 손해율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77~78%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인하 여력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손해율은 연말로 갈수록 높아지는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5개 손보사의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 기준 평균 손해율은 79.3%가량이다. 지난달 기준 이미 손해율 80%를 넘긴 손보사도 다수다. 자동차 정비업계에서 공임 인상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향후 원가 상승 부담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연말 넘기면 보험사들이 원가 부담과 오른 손해율을 근거로 자동차보험료 인하폭을 좁히려 시도할까봐 더욱 연내 처리에 서두른 것 같다"고 했다.

실손의료보험료도 인상률도 제한됐다. 생명·손해보험협회는 내년 실손보험료 인상률을 평균 8.9%로 결정했다고 전날 밝혔다. '제 2의 건강보험'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 다수가 이용하고 있는 만큼 민생을 위해 당초 업계가 주장한 두자릿수 인상률은 대승적으로 양보하라는 당정의 압박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지나친 '관치'가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에도 당국이 업계에 경고한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이 각 생명보험사의 저축성보험 상품의 금리 인상 경쟁 자제를 당부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최근 은행권 수신상품 금리 경쟁이 벌어지면서 저축보험 상품을 해약하고 은행 예·적금 등으로 자금이 이동하자 이를 막기위해 보험사들도 금리를 올린 바 있다. 금감원은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으로 보험사 건전성이 흔들릴까 우려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요즘 들어 유독 (당국의) 공문이나 연락을 많이 받는 것 같다"라며 "힘든 상황인 것은 알지만 채권 시장도 경색돼 자금조달도 어렵고 답답한 부분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다만 당국의 개입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산업인데다 정부의 개입으로 숨통이 트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으로 보험사에서 증권사 등으로 높은 수익률을 찾아 퇴직연금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차입 규제를 한시 해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보험사는 퇴직연금(특별계정) 자산의 10% 범위에서 1개월까지 단기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지만 내년 3월까지 이 한도가 사라졌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분야 산업에 당국이 전혀 개입하지 않을 수는 없다"라며 "보험사들이 보험료 올리는 것은 빨리 반영하고 내리는 것은 느슨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던 만큼 금융당국이 개입해 금융소비자를 지원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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