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 검찰총장’이란 직함이 더 잘 어울리던 2021년 6월, 국회의사당 야외 마당에서 만난 임시 부대변인에게 ‘윤석열의 공정’이 대체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 당시 전 검찰총장이 늘 말했던 공정이라는 개념이 잘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법조계에 오래 몸담았다고 해서 단순히 공정을 대변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물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윤 대통령의 공정은 ‘좀 다르다’고 부대변인은 답했다. 그럼 그 공정은 과연 어떤 것인지 되물었다.
당시 부대변인은 “정치는 좌, 우 대립이 항상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넘어서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으로 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떠올랐다.
드골 전 대통령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 지원금이 들어 있는 돈 가방 전달 책임자를 자원했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반역 행위를 놓고서 있었던 일이다. 드골 측근 입에서 그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드골은 간단히 이렇게 대꾸했다고 전해진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드골 전 대통령처럼 자신과는 반대 의견을 가진 다른 정치 진영 사람도 이해하려고 하는 공정이 윤 대통령이 하려던 정치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안타깝게도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내심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내각 인선이었다. 정치 경험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긍정적인 작용을 해 30대 청년이 발탁되지 않을까 보수 진영 소속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깜짝 등용되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을 속으로 했었다.
그러나 능력주의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 첫 내각은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으로 가득 찼다.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했고 오히려 쏠림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졌다. 능력주의보다는 ‘학력주의’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는 능력을 보여주기 전에 낙마했다. 검찰 출신들을 대거 등용한 점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에 부족했다. 윤 대통령이 말했던 공정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혹시 더 좋은 생각을 했다면 이를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의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 대신 ‘비판할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바라봤다면 지금의 국민의힘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역사를 보면 뛰어난 학력과 실천적 지혜 또는 공동선 실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서로 그다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학력주의가 잘못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하나는 데이비드 할버스탐의 고전적 저작인 ‘최고의 인재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존 F.케네디가 호화찬란한 학력의 소유자들로 내각을 꾸렸던 사례가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늪에 뛰어들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참모들에게 언급했던 ‘공정’을 실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만회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