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건강]유아의 '마음건강' 고려한 보육정책 필요하다

초등 입학연령 만 5세 하향 논란
발달 특성 고려해 정책 구현해야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아동을 위한 예산은 바로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정확히 말해주는 지표다. 예전에 해외 입양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조사하는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한창 해외로 입양아를 많이 보내던 시절, 우리 사회의 아동 예산은 정말 형편없이 적었다. 이후에도 크게 늘지 않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무상보육 제도를 전면 실시하면서 2014년에야 국내총생산(GDP)의 0.6%인 10조원 정도로 증가했다. 그나마 마련된 무상보육 정책은 아동의 눈높이보다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한 공보육 지원에 비중을 둬 보육의 질적 향상보다 양적 확대의 급행열차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 잦은 교사들의 이직, 아동 간 발달격차 문제 등 아이들이나 워킹맘들이 보육 현장에서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교육부 수장이 갑자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어 교육격차를 조기에 해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학부모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걱정이 빗발치고 있다.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니, 양질의 인재를 조기에 사회에 공급하고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으나 과연 우리의 보육, 교육 현장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런 결정을 했는지 의문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생후 4세까지 환경의 자극을 받아들여 두뇌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 결과가 평생 지속된다. 특히 태어나서 두 돌까지의 영아는 친근한 어른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해 정서적 안정을 느끼며 지내는데, 이 애착 대상들이 자주 바뀌게 되면 심한 불안과 더불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돼 두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아무리 좋은 물리적 환경이 마련된 곳이라도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아이들은 결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아기의 발달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 현 보육제도는 이런 과학적 사실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많은 영아기 아기들은 두 돌 이하의 아이들을 맡아주는 소규모 보육시설에서 지내게 되는데, 이 시설들에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의 고용이 불안정해 영아 담당 교사들의 평균 이직률이 34%에 이른다고 한다. 관련 단체들은 영아들의 질 높은 보육을 위해 교사 인건비 지급 방법을 개선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아직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의 대표적 ‘침묵(speechless)’ 그룹이라 항상 부모, 교사, 정책입안자 등 어른들의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아이들의 발달적 특성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구현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두 돌 이전의 아기는 가급적 집단보육보다는 부모가 1년씩 육아휴직을 번갈아 사용하며 가정에서 양육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사회적 지원이 이뤄진다. 영아 전담 어린이집, 야간보육, 일시보육 등 부모의 편의에 맞추는 정책 마련에 급급한 우리 사회와는 대조적이다. 예민한 기질을 가진 영아가 애착 대상과 갑작스러운 분리를 반복해 겪으면서 불안이 증폭돼 아예 말문을 닫아 언어장애로 필자의 진료실을 찾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 건강, 두뇌 발달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기존의 정책이 적합한지, 혹시 부족한 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칠 것인지, 예산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 철저히 분석하고 결정해야 한다. 치밀한 준비 없이 단기간에 공보육 체계로 전환된 우리의 보육시스템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질 높은 보육체계로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산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다.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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