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없는 촬영은 무조건 초상권 침해?… '증거 위한 행위는 문제 없어'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위협을 가하는 상대방을 촬영하는 행위는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형사 절차에 사용할 증거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 사회 상규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최근 전라북도 전주의 모 아파트 거주자 A씨가 부녀회장 B씨 등 주민 3명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2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현수막을 무단 게시하려다 이 모습을 본 아파트 주민이 제지하자 폭언을 했다. 이 과정을 함께 있던 주민 B씨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해당 영상을 또 다른 주민을 통해 관리소장과 동대표 14명에게 전송했다.

이후 4월 A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B씨가 찾아와 항의하자 욕을 하며 B씨의 팔을 비틀었고 결국 폭행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폭행 당시에도 B씨는 A씨의 행동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A씨는 2월과 4월 B씨가 자신을 촬영했다며 초상권 침해로 B씨와 주민들이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1, 2심의 판단은 촬영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1심은 A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2심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판결을 유지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피고는 분쟁이 있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 원고가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형사절차와 관련해 증거를 수집·보전하고 전후 사정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촬영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영상 촬영은 형사절차상 증거보전의 필요성과 긴급성, 방법의 상당성 등이 인정돼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어 "현수막 게시는 A씨가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사진 촬영이나 공표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동영상도 제한적으로 전송돼 A씨가 받아들여야 하는 범위에 있다"며 그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도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심은 초상권 침해행위의 위법성 조각사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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