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민 패싱’ 선거, 민심에 나중은 없다

4·7 재보궐선거가 실시된 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제3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아니 내가 우리 후보님한테 꼭 말할 게 있는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현장을 순회 중인 한 후보의 손을 잡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신세 한탄과 정부 비판이 섞인 말을 절절하게 털어놓기 시작하자 이 후보는 "가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자"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건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 한 두번이 아니었다. 2주 남짓한 기간에 서울시 전역을 돌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니, 시민들의 넋두리를 하염없이 들어줄 여유는 없었을테다.

후보들은 하루 6~8개의 지역구를 돌며 시민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들리는 소리는 ‘후보들이 하고 싶은 말’과 간간히 나오는 박수소리가 전부였다. 이어지는 연례 행사는 주먹인사와 사진 촬영. 유세차량에 청년들을 올려 마이크를 넘기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후보와 시민 사이 소통의 기회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렇게 시민의 목소리는 유세 차량 뒤편으로, 후보의 등짝에 쓰인 커다란 당 이름 뒤로 사라졌다.

이번 선거의 핵심 화두는 자질과 공약이 아닌 ‘단일화’와 ‘네거티브 공세’였다. 이 역시 시민의 설 공간이 없었던 배경이었다. 1년 3개월간 서울시를 책임질 시장을 뽑는 선거임에도 여야는 당의 미래를 좌우할 도구로만 해석하고 이용했다. 대다수 언론 역시 여야 간 공세에만 몰입했다. 이번 선거는 그들만의 축제 혹은 악몽이 된 이유다. 투표 전날까지 "도저히 뽑을 사람이 없다"며 기권표를 행사하겠다는 시민도 현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다. 단일화로 시작된 선거는 결국 ‘생태탕’, ‘페라가모’로 끝났다.

민심에 나중은 없다. 정치인은 당장 오늘의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어렵게 자리에 오른 만큼 신임 시장과 야당 그리고 이번에 패한 여당 또한 지금 당장 서울시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했으면 한다. 특히 신임 시장은 후보 시절 두 다리로 서울 곳곳을 누비며 접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바람을 기억해내며 시정에 반영하길 기대한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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