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의 그림자…감시의 일상화

사측의 관리·감독 강화에
피로감 호소 직장인 늘어
일일보고서 등 추가 업무
시간대별 보고 요구하는 곳도

전문가 "동기유발에 부정적
근로자 인격권 침해 가능성"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경제 이정윤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석 달째 재택근무 중인 중견기업 직원 박승호(31·가명)씨는 재택으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매일 근태 시스템에 퇴근 도장을 찍은 뒤 회사에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다음 날 할 업무를 적어 상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에는 하지 않았던 일이다. 수시로, 구두로 보고하면 됐을 일이다. 박 씨는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퇴근 시간이 오후 6시에서 6시30분으로 늘어났다"며 "재택근무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직장인들의 새로운 근무 형태가 되고 있는 재택근무. 하지만 사측에서 근무 상태를 점검·감독하려는 움직임이 늘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는 근무 성실도 등을 시시각각 점검하겠다는 취지지만 그 정도가 심해 피로감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유철규(36·가명)씨도 재택근무가 불편하다. 한 달여 전부터 회사에서는 근무시간에 메신저를 켜놓고 1~2분 안에 답장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화장실을 가는 등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불안하다. 언제 근무 상태를 확인하는 상사의 메시지가 올지 몰라서다. 유씨는 "재택근무 초반만 해도 이러한 규칙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생겨났다"며 "하루하루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아 차라리 회사에 출근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직장인 937명 중 23.1%가 ‘재택근무 시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나 제도 미비로 불편을 겪었던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실제 직장인이 겪은 재택근무 부당 지시 사례로는 ‘30분마다 화면 캡처 후 전송’ ‘실시간 모니터로 업무 진행 상황 파악’ ‘화상통화로 일을 하고 있는지 인증’ 등으로 나타났다. 재택근무 시 일과 생활의 분리가 어렵고 근무시간 이후 업무 지시도 많아졌다는 응답이 나왔다. 또 가정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업무 집중이 어렵다는 직장인도 있었다. 최모(32)씨는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두 아이가 계속 찾아와 놀아달라고 칭얼거린다"며 "문을 잠그고 업무를 하면 계속 방문을 두드리는 것은 물론 우는 소리가 들려 집중하기 힘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측의 과도한 관리가 재택근무의 장점을 약화시킨다고 설명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재택근무 시 실시간으로 감독하거나 사후적으로 근무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과거의 단순한 통제 방식에 젖어 있는 탓이다. 재택근무의 장점인 재량권을 부여해 동기 유발을 하는 것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회사 측이 감시를 통해 일일이 통제하려는 것은 근로자의 인격권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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