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러시모어의 세 번째 조각상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식이 열린 러시모어산의 모습. 왼쪽부터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조각이 새겨져있다.[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위치한 러시모어 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조각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통령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최근 인종차별 시위가 격화되면서 세 번째 조각상인 루스벨트 조각상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루스벨트 조각상이 표적이 된 이유는 생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성공은 앵글로색슨의 우월한 혈통 덕분"이라 주장하던 철저한 백인 우월주의자인 탓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인정한 황인종은 일본인이었다. 루스벨트는 1905년 러일전쟁의 중재를 맡아 양국의 종전을 이끌어내며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고, 러시아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백인 국제사회의 바람직한 신입회원인 일본이 한국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루스벨트의 인종차별주의에서 일본만이 예외가 된 이유는 미국의 국익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시작해 하와이와 일본, 중국을 잇는 태평양 교역로의 안전한 확보가 주된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자국과 동맹인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며 적국인 러시아 세력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줘야만 했다. 역시 홍콩을 러시아로부터 방어하고 싶은 영국 또한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이 두 나라는 황인종의 나라 일본의 근대화 정책과 군비 확장을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러일전쟁 당시 일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 군사동맹 중이던 대한제국은 루스벨트에겐 한없이 열등한 황인종 국가로 묘사될 뿐이었다. 그는 "한국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나라이며 조선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처진 인종으로 자치에 적합지 않다"며 맹비난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의 황제와 대신들은 이런 루스벨트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그에게 로비하기만 바빴다. 고종이 직접 미국에 금광 채굴권이나 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쥐여 주고, 루스벨트의 어린 딸까지 국빈으로 대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러시모어의 세 번째 조각상에는 이처럼 열강의 세계 전략에 대한 이해 없이 외교에 뛰어들었다가 멸망한 한 약소국의 역사 또한 들어가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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