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팬데믹이 불러낸 좀비기업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다. 경제가 멈추자 취약한 연결고리에서 파열음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들의 파산이 시작된 것이다. 소매ㆍ에너지ㆍ호스피털리티 등 현금 흐름이 막힌 업종 가운데 빚이 많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파산보호신청 건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파산 가능성이 높은 대기업들의 명단을 모은 사이트에선 우리나라 기업도 눈에 띈다.

일생을 부실기업 연구에 헌신한 알트먼(E. Altman)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전부터 미국 기업의 펀더멘털은 취약했고, 값싸게 신용을 쓰고 있는 기업들 중 상당수는 도산했어야 할 '좀비기업'들이라고 주장했다. 알트먼 교수는 50년 전 기업의 부도 확률을 측정하는 Z스코어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팬데믹으로 신용 강등을 당한 많은 기업들의 도산이 임박했으며 2021년 기업도산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봤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1년 안에 미국 내 1900개 투기등급 기업 중 8%가 파산하고 2년에 걸쳐 20%로 높아질 것이라는 그의 예측을 보도하기도 했다.

기업의 명운은 지금처럼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업종에 있거나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할 때 꺾인다. 지난 10년간 S&P500 지수는 170% 상승했는데 이 지수에 편입된 11개 업종 중 에너지업종은 30% 가까이 하락했다. 필수 소비재가 아닌 경기변동에 민감한 임의 소비재는 300%가량 상승했는데 같은 업종이라도 자동차와 e커머스는 하늘과 땅 차이다. 400% 가까이 오른 IT 업종은 S&P500 대기업 상장총액의 2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장치ㆍ기계장비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공업부문은 고작 100% 남짓 올라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이 확연하며 현재 상장총액의 7.5%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자본시장이 산업구조개편의 동력이며 기업의 부침을 결정하는 1차 요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듯 팬데믹이 글로벌밸류체인(GVC)을 위축시키고, 디지털 혁명과 자동화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이 같은 산업구조개편이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부문의 부채는 주요국 가운데 일본(380.7%), 중국(258.7%), 미국(254.2%), 한국(237.2%) 등의 순으로 높다. 4개국 가운데 정부는 일본(217.8%)이, 기업은 중국(149.3%)이, 가계는 우리나라(95.5%)가 높다. 기업부채는 미국(74.9%)보다 우리나라(102.1%)가 월등히 높다. 가계뿐 아니라 기업도 많은 빚을 안고 팬데믹을 맞은 것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말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것을 지적했다.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부채가 늘어나고 수익성이 저하되고, 이자지급능력도 떨어진 것이다.

올해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국내 45개 대기업의 신용등급을 낮췄거나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국내신용평가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앞으로 크고 작은 많은 기업이 도산 위험에 직면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비록 팬데믹의 직접적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산업구조전환을 하지 못해 수출경쟁력이 취약해진 우리나라 경제는 간접적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원활한 기업구조조정과 신속한 기업회생절차에 어떤 장애요인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 관련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좀비기업들이 이미 취약해진 기업생태계를 더 망가뜨릴 수 있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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