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본에서 직접 마주한 자이니치의 삶, 연극 '혼마라비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연극 '혼마라비해?'는 서로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연극은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자이니치는 1945년 8월15일 광복 후에도 다양한 이유로 일본에 남은 조선인을 뜻한다. 1945년 당시 일본에는 약 200만명의 조선이 체류했고 이들 중 약 60만명이 광복 후에도 일본에 남았다. 조국은 광복 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겪었다. 남북은 대립하면서 자이니치에게 선택을 강요했고 이들은 어느 쪽에도 속하기 힘든 경계에 놓이게 된다.

극은 작가 김연미씨가 일본에서 실제로 자이니치를 만나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다. 극 중 인물 '영주'가 김연미씨 역할을 한다. 영주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이니치들이다.

영주는 극 중 인물 뿐 아니라 해설도 맡는다. 영주의 해설은 관객들이 자이니치를 섬세하게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극이 시작되면 영주가 등장해 관객에게 우선 공연을 보러 와 줘서 고맙다며 인사한다. 이어 스물네 살이었던 2009년 일본 극단의 한국어 번역 작업을 도와주러 가게 되면서 겪었던 일을 연극으로 만들었다며 극을 소개하고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광식이 아저씨가 운영하는 잡화점 '만세상회'다. 극에 등장하는 자이니치들이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밥도 먹고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는 공간이다. 이들은 서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영주는 일본 극단에서 일하는 지숙을 만나 지숙이 하숙하는 만세상회로 향한다. 영주는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만세상회 사람들과 따뜻하게 포옹하지만 첫 날 저녁을 먹던 중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다. 영주는 만세상회 사람들이 모두 간첩이 아닌지 벌벌 떨며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다. 자이니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영주는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관객 역시 영주의 시선에 따라 자이니치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게 된다.

무거운 소재를 삼았지만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경쾌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영주와 만세상회 사람들이 서로간 간극을 좁혀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적지 않은 웃음을 유발한다. 한편으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자이니치들의 일본 귀화 등 민감한 문제를 다루면서 극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그동안 너무나 단편적이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실한'이 얼마나 이 연극에 진정성을 담으려 했는지 느껴진다. 자이니치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실제 재일 한국인들인 양 특유의 일본 억양이 섞인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일본어 강사를 두고 몇 개월 간 훈련한 결과다. 객석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호흡도 훌륭하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연극 제목 '혼바라미해?'의 의미는 극의 마지막에서야 드러난다. 극의 제목에 남겨진 물음표는 우리가 여전히 재일 한국인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듯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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