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5G에 가려진 내수 중심의 인터넷망 정책

우리 삶과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교역을 위한 인프라를 확보한 국가만이 국제적 패권 다툼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정보사회 혹은 산업사회 이전에 이미 고대사회에서도 입증된 바다. 기원전 753년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로마가 이탈리아 전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방적 문화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능하게 해준 '도로'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구축한 덕분이다. 로마의 도로는 본토를 비롯해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스페인 등은 물론 알프스산맥을 넘어 프랑스, 심지어 바다 건너 영국 지역까지 연결됐다. 이러한 도로망을 기화로 교통수단인 '전차와 마차'가 발달했으며 상인들을 위한 휴게소, 숙박시설 등이 번창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4차 산업사회의 핵심 인프라는 단연코 '망(네트워크)'이다. 국제적으로 이뤄지는 모든 교역과 경제 그리고 사회적ㆍ인적 연결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로마 도로망을 기반으로 한 여객ㆍ운송ㆍ숙박산업이 네트워크를 기화로 구글ㆍ아마존ㆍ네이버 등의 디지털 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도로를 통하던 정보 전달ㆍ문화 개방은 네트워크를 통해 유튜브ㆍ페이스북ㆍ카카오 등의 모습으로 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정책은 'IT 강국ㆍ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내수 중심의 근시안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 서비스의 '탈국경성'에도 불구하고 국제망 1계위(Tier-1) 사업자가 없다. 1계위 사업자는 자사의 가입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다른 '망사업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접속할 필요가 없으며, 자사의 필요에 따라 무정산 상호 접속만으로 완전한 연결(Full Connectivity)이 가능한 망사업자 집단이다. 미국은 다수의 1계위 망사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ㆍ프랑스ㆍ스페인은 물론 일본ㆍ홍콩ㆍ인도 등도 1계위 망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계위 망사업자가 없어 구글ㆍ페이스북 등 글로벌 서비스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국제망과 접속해야 하고 엄청난 트랜짓 비용(중계접속 비용) 등 통신접속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지극히 예외적인 '망 이용 기준'을 도입했다. 국제적으로 동일 계위의 망사업자 간 통신접속료 산정은 99.98% 이상이 자율적 '무정산' 방식이다. 정부가 강제하는 경우도 극히 예외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호접속고시'를 통해 KT, LGU+, SKB 등 동일 계위의 망사업자가 서로 주고받은 트래픽 양에 따라 비용을 정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망사업자 입장에서는 트래픽을 유발하는 대용량 콘텐츠나 서비스를 유치할수록 다른 망사업자에게 정산해야 하는 비용이 많아지므로 그러한 상호 정산의 부담을 콘텐츠ㆍ플랫폼 사업자가 지불하도록 비용을 전가했다. 그 결과 국내 콘텐츠ㆍ플랫폼 사업자가 지불하는 접속료는 Mbps당 9.22달러로 미국의 4.3배, 유럽의 7.2배 정도이고 일본의 2달러, 싱가포르의 1달러39센트보다도 현저히 높다.

로마의 길이 숙박ㆍ문화ㆍ교통 등 부가적 경제를 융성하게 했듯이 글로벌 디지털 경제를 위해 네트워크는 저비용으로 완전한 국제적 연결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네트워크 연결은 고비용이며 국제적 연결성 또한 뒤처진다. 인터넷 경제의 부흥에 이바지하는 거시적 네트워크 정책이 모색돼야 한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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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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