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공소시효와 사죄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오래 전 일이다. 개그맨 김정렬씨와 그의 형 이야기다. 1977년 가을 어느 날, 형은 군 복무 중이었고 김씨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때다. 외박을 나오면 동생의 자취방을 들렀던 형이 그날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외박증이 없었다. 선임병이 외박 나간 틈을 타서 몰래 나왔다는 것이었다. 둘은 밤새 얘기꽃을 피웠고, 형은 다음날 새벽에 부대로 복귀했다.

의무병으로 근무했던 형은 당시 26세, 김씨는 고등학생이었다. 김씨는 그 이후로 다시는 살아있는 형을 볼 수 없었다. 며칠 후 부대에서 사망 통보가 왔다. 날벼락이었다.

"지프차에서 쌀 한 가마니를 내려놓고는 '형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국립묘지에 안장 시키고 연금 문제도 다 해결해 줄테니 화장을 시키자'고 하더라" 김씨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푸르렀던 한 세계가 사라졌는데, 이유는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시키는대로 화장을 하고 났더니 말이 달라졌다.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믿기 힘들었다. 불과 하루 전에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평생 그림자처럼 떼어지지 않는다.

30년이 지났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자 형의 죽음을 재조사해달라고 했다.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려 위원회가 내놓은 결과는 심장마비 쇼크사, 구타에 의한 사망이었다. 선임병이 형의 부대 무단이탈을 이유로 저지른 일이었다.

처벌은 할 수 없었다. 군 복무 중 상해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해자를 만났다. 가해자는 "죄를 짓고 평생 짐을 지고 살았다"며 사죄했고, 김씨는 "이제라도 사실대로 말해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받아들였던 것이다. 처벌은 못해도 진실이 밝혀지고 형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우리 주위에 겉만 인간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절감케하고 몸서리치게 한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분노로 우리를 묶는다. 교도소에 있다는 그 존재에게는 '죄'나 '마음의 짐', 혹은 '사죄' 같은 개념이 장착돼 있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는 공소시효의 수혜자가 되었다. 공소시효는 인류가 오랜 숙고 끝에 만든 보편적 제도이겠지만 예외가 간절해진다. 그는 명백한 증거를 비웃는 것처럼, 혐의를 부인하는 중이라고 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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