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북대화' 의지, 이희호 여사 조문단 파견 여부로 판명

北, DJ 서거·정주영 별세 때 조문단 파견이희호 여사, 김정일 사망 때 평양 직접 조문"조문 형식·위상이 北대화 의지 판별 시금석"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아 왔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1962년 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해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사진은 2011년 12월 26일 이희호 여사가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김정일 시신에 조문한 뒤 상주이자 후계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하는 모습.

[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했던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지 주목된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 조문단을 보냈다.

조문단이 서울을 찾을 경우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다. 조문단 파견 여부, 그리고 규모와 위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 대화 의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은 물론 한국과도 모든 대화 창구를 닫아놓은 상황에서 조문단 파견은 정세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대화 재개에 총력을 쏟고 있어 북한의 조문단이 서울을 찾을 경우 대화 테이블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북유럽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오는 16일 귀국할 예정이다. 사회장으로 치러지는 이 여사의 장례식 발인은 14일이어서 조문단과 문 대통령의 만남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서울에 남아 있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서훈 국정원장과의 면담은 가능하다. 2009년에 대남사업을 담당하던 김 부장이 온 것처럼 이번에도 북측의 통전부장이 조문단에 포함된다면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의 접촉도 기대된다. 하노이 회담 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물러나고 새로 부임한 장금철 통전부장의 대남 데뷔전 가능성도 주목된다.

2008년 9월 18일 경기도 구리 한강 둔치에 만개한 코스모스 단지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 여사가 전직 대통령이 아니고 문 대통령이 현재 북유럽 순방 중이기 때문에 북한은 통전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김정일이 2011년 사망했을 때 이 여사가 직접 평양을 방문해 조문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기 때문에 북한이 2009년에 파견한 것과 동급의 고위급 조문단을 보낼 수도 있다"고도 봤다.

이 경우 박광호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 담당 부위원장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이 방문할 가능성이 높지만 박광호 부위원장 대신 김기남 전 부위원장과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방문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정 본부장은 예상했다.

북한의 조문단 파견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과거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해 극진히 예우한 바 있다.

이 여사는 2011년 12월 26일 김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위해 평양을 찾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상주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만난 첫 남한 인사였다. 북한은 이 여사의 숙소로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사용한 백화원초대소를 제공하는 등 예우에 만전을 기울였다. 이 여사는 김 위원장의 초대로 2015년 8월에도 북한을 다녀왔다.

정 본부장은 " 북한의 조문단 파견 여부 그리고 조문단의 위상 여부는 향후 김 위원장의 남북대화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북한이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조문단 대표로 파견한다면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확인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단순히 김 위원장 명의의 조전만 보낸다면 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0년 3월 바티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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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조문단 전례는…정주영 때 첫 파견·DJ때 최대규모
북한이 최초로 남측에 조문단을 파견한 것은 2001년 3월 21일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다. 정 전 회장 별세 이틀 후인 23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전을 띄우며 조화 전달 및 조문단 파견을 알렸다. 이튿날인 24일 고려항공 서해직항로를 통해 송호경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전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4인의 조문단을 파견했다.2003년 8월 4일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사망 때 북한은 이튿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전을 보냈다. 이때는 조문단은 보내지 않은 채 금강산 등에서 추모행사만 했다.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이틀 후인 25일 조전을 보냈다. 이때도 조문단 파견은 없었다.김대중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서거하자 북한은 조문단을 파견했다.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보내고 특사 조의방문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사흘 뒤인 8월 21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6명으로 구성된 특사 조의방문단이 특별기로 서울에 도착했다.조문단은 김포공항에 도착해 국회 빈소를 조문하고,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과 면담, 이 여사 등 유가족과 김대중평화센터에서 환담을 했다.방한 이틀째인 22일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23일에는 청와대에서 당시 이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조문단으로 왔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사실상 특사 임무까지 수행한 셈이다. 북한의 조문단 구성과 파견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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