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궁리/권오영

이상한 새가 며칠째 눈 위에 앉아 있다

산 그림자를 쪼아 먹는 새는 끄덕끄덕

바닥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란다 유리로 내다보는 산은

새를 품기 위해 그 자리에 오래

있어 줘야 할 것처럼 보인다

사흘째 눈 내리던 날

골똘히 앉아 자신의 깃털을 뽑는 새에게

궁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는 너를 여기서 바라고 있을 거야

궁리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지키기 위해

궁리와 여기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는 동안 거리감을 느낀

궁리도 여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궁리가 번역되지 않은 문장으로 읽혔지만

끄덕끄덕 푸드득 콕콕만으로도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그런대로 소리와 몸짓만으로도 내용이 이해되었다

읽혀지는 방식이 서툴렀을 때의 궁리는

내가 아는 새들이 아니었으므로 이상했고

신비로웠고 날마다 궁금해졌다

누군가가 이상한 새를 품기 전 품어 버린

궁리가 여전히 끄덕이고 있다

품는다는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궁리는 그 자리에 나는 여기서 궁리를 생각한다

■"품는다는 것"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당신의 신분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멈추는 것. 내가 질문의 주체가 되길 그만두는 것. 그리하여 당신을 내 질문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당신을 당신 그대로 두는 것. 당신을 당신대로 두고 다만 바라보는 것. 꽃이 피면 그저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는 것. 당신이 꽃필 수 있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비로소 궁리하듯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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