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노점상 암자/김경엽

때로 참선이란 생강이며 마늘 까는 일

교문사거리 육교 아래

꺼질 듯 웅크린 암자 한 채

작고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사리 같은

공덕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비워져야 또다시 쌓아 올릴 맵고 쓰린 이생의 탑들

다 합쳐도 만 원어치 이하

경전처럼 펼쳐진 바구니 세 개는

아무도 읽지 않고 있다

폭설이 가피처럼 내리는 저녁

암자의 식은 어깨를 눈발이 담요처럼 덮는다

때로 해탈이란 눈 묻은 고추며 깻잎들을

묵묵히 털어 내는 일

오래 침묵하는 생의 자세로

시드는 푸성귀와 거친 눈발 사이에서

연꽃 한 송이 피워 내는 일

막 켜지는 가로등 불빛이 눈부처처럼 환하다

■‘침묵’은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그래서 ‘침묵’은 그저 자신을 유폐하는 것이 아니라 사력을 다해 자기를 이 세상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것.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어떤 말로도 메꿀 수 없는 빈 구멍이 되길 자처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 속으로 고통과 비명과 신음과 상처를 하나하나 모두 불러들이는 것. 그것들에게 몸을 내주고 더불어 사는 것. 고통이 비명이 신음이 상처가 “묵묵”해지도록 마침내는 모든 “저녁”들이 다 환해지도록 “꺼질 듯 웅크”리고 버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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