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바르샤바 게토 봉기

허진석 부국장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한 다음 바르샤바에 유대인 수용소를 지었다. 이곳이 게토(ghetto)다. 1942년부터는 유대인 말살 정책이 본격화됐다. 이 해 7월부터 병에 걸리거나 장애가 있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링카로 보냈다. 곧 죽음의 수용소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기록에 따르면 1942년 7월22일부터 9월12일까지 친위대와 경찰 부대는 26만5000명을 트레블링카 학살수용소로, 1만1580명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냈다. 이송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바르샤바 게토에서 1만 명 이상이 학살됐다.

유대인들은 끌려간 사람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알았다. 공포가 번져가는 가운데 몇몇 유대인들이 투쟁 조직을 만들어 저항한다. 저항이라고는 해도 게토에 고립된 그들이 전투 준비를 하기는 불가능했다. 더구나 상대는 유럽 최강의 군대. 그러나 가만히 있어봐야 짐승처럼 끌려가 도살될 뿐이다. 저항을 택한 유대인들은 인간답게 죽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 모두는 인간답게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선언문을 남겼다. 요행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을 때와 장소를 우리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 봉기했다고 했다.

1943년 오늘 오전 6시. 독일 병력이 게토에 진입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신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킨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야훼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해방을 요구하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자 재앙을 내린다.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長子)들과 가축의 맏이를 죽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흠 없는 수컷 양이나 염소를 잡아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게 하였다. 그 표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서, 즉 유월(逾越ㆍPassover)하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3년의 유월절에는 유대인들의 피가 역사의 문지방을 적셨다.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유대인들이 사용한 무기는 주로 권총이었고, 소총도 귀했다. 화염병을 만들어 던지기도 했다. 독일군은 병력을 하루 평균 2100명 이상 동원했다. 그래도 최루가스와 독가스를 사용해야 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이나 게토에서 퇴각해야 했다. 나중에는 게토에 있는 모든 건물을 불태워버리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무라노프스키 광장에 있는 건물 한 곳은 4월말까지 독일군의 공격을 견뎌냈다. 건물 옥상에서 깃발 두 개가 휘날렸다. 하나는 폴란드 국기, 하나는 푸른색과 흰색 천으로 만든 배너였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 두 색을 국기에 사용한다.

봉기를 주도한 유대인군사연합(ZZW) 지도부가 4월29일 괴멸했다. 5월8일에는 또 하나의 지도부인 투쟁 조직(ZOB)도 독가스 공격을 받고 전멸했다. 봉기는 5월16일에 진압됐다. 대한민국의 시민들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날짜 사이에서 유대인의 자유혼이 불타올랐던 것이다. 독일군은 게토를 폐허로 만들고 살아남은 유대인 5만6065명을 체포해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다. 전투 중에 전사하거나 붙들려 총살 당한 유대인은 1만3000명에 이르렀다. 독일군 사상자는 기록에 따라 110명에서 300여명으로 추산된다.

오늘날 바르샤바의 유대인 박물관 앞에 게토 봉기 기념비가 서 있다.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던 12월7일 기념비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었다. 역사는 이 일을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Kniefall von Warschau)'로 기억한다. 브란트의 행동은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과 속죄로 해석되었다. 브란트는 나치 정권 시절 아돌프 히틀러에 항거하여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나치 독일의 핍박을 받은 그의 행동을 보고 세계는 "사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사과를 했다"며 감동했다. 브란트는 서독과 동구권 국가의 관계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huhball@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