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보사 사태로 본 K바이오 민낯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세계 첫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허가한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가 출시 16개월만에 주성분이 뒤바뀐 것으로 확인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2017년 7월 식약처 허가를 받고 같은 해 11월 제품을 출시하면서 국산 신약의 대표주자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승인을 받지 않은 세포가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19년의 장대한 개발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인보사 사태는 바이오헬스 강국을 선언한 한국의 제약ㆍ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코오롱 측이 인보사의 주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간단한 유전학적 계통검사인 STR을 통해서다. STR은 DNA 비교ㆍ분석을 통해 같은 계통의 세포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친자 감별 등에 쓰이는 검사법이다. 코오롱은 미국 임상을 진행하던 중 미 식품의약국(FDA)의 권고에 따라 STR 검사를 시행했고, 여기서 주성분이 다른 사실을 15년만에야 인지한다.

허가를 내준 식약처도 한숨이 나온다. 현재 STR 검사장비가 없는 식약처는 주성분이 다르다는 업체 보고를 받은 후에야 부랴부랴 STR 장비가 있는 서울대ㆍ고대 법의학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한다. 전문가들은 세포주 계통 분석을 위한 유전자 검사법인 STR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는 데 의구심을 제기한다. 기존 화학 의약품과 달리 유전자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 개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규제기관이 세포를 확인하는 기본 검사를 누락한 채 허가를 내줬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실 검증 논란을 의식한 식약처는 앞으로 연구개발과 제조에 사용된 세포에 대해 STR 검사를 의무화하고, 허가 과정에서 세포의 동일성을 교차 검증하겠다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놨다. 이미 국내에서 인보사를 환자에게 투여한 건수가 3707차례에 이르는 상황에서 처해진 조치다. 또한 인보사 개발사인 미국 코오롱티슈진을 현지 실사하고 자체 검증을 강화한 뒤 행정처분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식약처의 눈은 미 FDA로 향해 있다. 깐깐한 검증 능력을 갖춘 미 FDA가 코오롱의 임상3상 재개 여부를 먼저 판단한다면 이를 참조해 행정처분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속내다. 식의약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기관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미국 상황을 참고해야 하는 씁쓸한 상황이 바이오 시대 식약처가 처한 현실인 것이다. 인보사 사태가 실패가 아니라 K바이오의 성장통이 되려면 규제기관인 식약처부터 선진화돼야 한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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