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3월의 부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3월 첫 주말을 가족과 강원도 정선에서 보냈다. 정선까지 가는 길 들른 크고 작은 관광 도시들은 생각보다 훨씬 한산했고, 밥 때를 맞은 식당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불황은 불황 인가보다 하며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웬 걸. 두 곳에서 엄청나게 긴 입장 대기줄을 목격했으니. 한 곳은 카지노요, 다른 한 곳은 작년 여름 개장한 대형 워터파크다. 안타깝게도(?) 워터파크는 나의 목적지. 우리집 7세 어린이에게 이번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게 해주려 3시간여를 달려 온 것이다.

강원도는 가족 친화적 숙소가 많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그나마 가까운 미세먼지 덜 나쁨존(zone)이라는 점. 그 중에서도 개장 1년이 안 된 이 곳은 시설이 깨끗해 어린 자녀와 함께 오기 적당하다는 점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우리는 표를 끊고 신발장에 신을 넣고 있었고, 점심때를 지나자 누군가와 생 살이 서로 닿지 않고는 물놀이를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와 남편은 수영을 정말 좋아하지만 겨울의 이 곳은 단 한 줄의 직선 레일도 없었고, 어른들이 갈 곳이라고는 김이 살짝 올라오는 복분자탕, 비타민탕, 민트탕 따위가 전부였다. 구명조끼를 입힌 아들을 손 닿는 거리에 띄워 놓고, 같은 길을 빙빙 도는 유수풀을 체념한 듯 떠다녔다.

체감하기에 열에 여덟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나 같은 부모들이었다. 입학과 개학 직전 부랴부랴 숙제하듯, 뭐 하나라도 즐기게 해 주려고, 주말을 반납한 채 해발 1000m까지 신상 수영장을 찾아 온 것이다. 3월의 부모란 참 고달프구나, 생각했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맞지만, 굳이 이런 개인적 상념을 적는 이유는 주말 내내 뉴스와 포털 토픽을 장식한 '유치원 개학연기' 소식 때문이다. 이렇게 비슷한 여건에 놓인 수 많은 부모들 중 누군가는 오늘 예상하지 못한 곤경을 맞았으리라. 매일 빠짐없이 밥벌이를 해야 하는 탓에 아이를 급하게 맡기느라 진땀 빼며 눈치를 보고 있으리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지난 주말 나와 어깨와 발바닥과 머리카락을 스쳤던 그 어떤 워터파크 인연 중 '개학연기' 문자를 받은 이들이 있다면 오늘의 어려움을 수월하게 이겨내길 바라본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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