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총리 '혐한 언동 日 정치인 신중한 처신 요망'

이낙연 총리 일한의원연맹 회장과 회동 하루 후 이례적 강경 발언
日 정부 주장 억지 판단 배경...징용배상 판결 대응 등 영향 예상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백종민 선임기자] "(일본) 당사자들의 신중한 처신을 요망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4일 이례적으로 일본에 대해 작심하고 강한 불만을 표명하며 비판했다. 최근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본의 행동에 대해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을 지낸 이 총리가 이렇게 발언한 것은 최근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억지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향후 일본 측이 요구하는 청구권협정에 따른 강제징용 피해자 대법원 판결에 대한 협의 등과 관련해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총리는 이날 열린 제68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시작에 앞서 정치와 외교의 신뢰에 대해 말하겠다며 운을 뗐다. 이 총리는 최근 보수 야당의원들의 5ㆍ18 발언과 일본의 언동을 엮어 신뢰의 문제로 규정했다.

이 총리는 "요즘 한일 관계에 몇 가지 어려움이 생기자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전직 외교관 등이 자국내 혐한 기류에 영합하려는지 신뢰에 어긋나는 언동을 하곤 한다. 본인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전하거나, 본인 처지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총리는 이어 "그런 일은 정치와 외교의 근간인 신뢰에 손상을 주는 일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지만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당사자들의 신중한 처신을 요구했다.

이 총리의 발언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왕이 사과해야 한다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에 대한 일본의 반응과 연계해 볼 수 있다. 일본 정가와 정부는 문 의장의 발언이 담긴 인터뷰가 전해진 지난 8일 이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고노 다로 외무상 등이 연이어 사과와 발언 철회를 요청했다. 일본은 외교 라인을 통해서도 같은 요구를 했다. 따라서 이 총리가 언급한 일부 정치인은 사실상 아베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지난 12일 비공식으로 방한해 다음 날 이 총리와 만나 문 의장 발언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이 총리와 만난 후 현지 언론에 '일왕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문 의장의 발언에대해 "귀를 의심하는 듯한 발언"이라며 "제대로 반성해 한일관계를 위해 일해주기를 바란다"고 이 총리에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누카가 회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 총리는 또 '일본 기업이 처음에 재판에 응해놓고 졌으니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와 누카가 회장은 한일ㆍ일한의원연맹 활동을 통해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왔지만 이번 회동에서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대법원 판결에 대해 총리실을 중심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총리도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강제징용 소송 관련 대국민 정부 입장 발표문'을 통해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된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총리의 이날 발언은 일본이 주장하는 우리 함정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 문제에 대한 불만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공격용 레이더를 조사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국제 여론전에 나섰다. 일본은 우리 측이 반박한 초계기의 저공 위협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총리는 일본이 의도적으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불만을 이번에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관계가 외교의 손을 떠나 정치인의 손을 타며 악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일 관계를 과거사와 미래사를 투트랙으로 봐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일본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15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일 외교장관 회의는 이번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강경회 외교부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지난 1월에도 스위스에서 만나 레이더 조사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지만 입장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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