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해녀’는 어떻게 혈세 100억을 보상받았나?

울주군에서만 보상금 100억 원 지원…주민 절반이 ‘가짜 해녀’
담당기관 보상 담당자, 퇴직 후 브로커로 변신해 ‘떳다방’ 식 운영 덜미

울주군의 한 어촌마을 주민 중 절반이 가짜 해녀로 등록해 수십억원대 보상금을 챙겼다 덜미를 잡힌 가운데 보상금을 노린 브로커들이 '떳다방'식 설계를 주도한 것으로 해경 조사 결과 확인됐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해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1932년 제주에서 항일운동(잠녀투쟁)을 이끈 해녀 5명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 바 있다.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해녀 항일 투쟁이 국가에 의해 재조명되는 사이, 어느 어촌 마을에선 물질 한 번 안 한 택시기사와 PC방 사장, 체육관 관장 등이 자신을 해녀라고 신고한 뒤 정부로부터 총 21억여 원의 보상금을 타내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가짜 해녀로 둔갑했던 것일까?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의 한 작은 어촌마을, 해경은 이곳 주민 중 136명이 해녀(나잠어업)로 등록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경의 수사 결과 위장 전입 또는 조업일지를 허위로 작성해 보상금을 타낸 가짜 해녀가 130명에 달했다. 결국 이 마을에서 실제 조업을 나가는 ‘진짜 해녀’는 6명이었던 셈이다.

수사에 나선 울산 해경에 따르면 적발된 가짜 해녀의 직업은 PC방 사장, 택시기사, 체육관 관장, 회사원 등 다양했으며 심지어는 90세가 넘는 노인, 말기 암 환자까지 해녀로 등록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녀로 물질을 하기 위해선 ‘나잠어업’ 허가를 받은 뒤 연간 60일 이상 조업해야했지만, 이들 가짜 해녀들은 어촌계장과 전직 한국수력원자력 보상 담당자에게 돈을 주고 가짜 어업일지를 만들어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정부 보상금을 노리고 가짜 해녀 행세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 앞바다엔 신고리원전 3·4호기를 비롯 한국석유공사 가스전 등 발전소와 원유시설이 있어 이로 인해 어업피해 보상 규모가 집중된 지역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경은 지금까지 서생면을 포함 울주군 5개 마을, 총 480여 명의 해녀에게 돌아간 보상금 규모에 대해 고리원자력본부 38억 원, 울산해양수산청 40억 원, 한국석유공사 17억4,000만 원, 울산도시공사 4억8,000만 원 등 총 100억 원 가까이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했다.

어업피해보상금 규모가 커지자 이를 범죄에 악용한 배후에는 전 한국수력원자력 보상담당자 A씨가 있었다. 보상업무에 정통했던 그는 서생면 어촌계장 B씨와 전 이장 C에게 접근해 다수의 주민을 가짜 해녀(나잠어업)로 신고하게 한 뒤 피해조사 용역기관 역시 인근 대학이 아닌 타 지역 대학교수를 섭외해 조사보고서를 의뢰하는 등 최대한 많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경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보상금 허위 수령 근절을 위해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가짜 해녀들이 대규모 보상금을 빼간 서생면 일대는 고리원전과 석유공사의 해상공사로 인해 해저 면이 사막화되는 ‘백화현상’이 가속화 돼 실제 어민 피해가 지속해서 누적되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곧 어업에 대한 소멸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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