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남의나이/이정록

환갑이 넘으면남의나이를 먹는다고 한다.허망하게 죽은 젊은이와한 몸이 되어 황혼 길을 걷는다.다시 맞은 봄으로사랑을 불태우기도 한다.팔순이 지나면남의나이를 모신다고 한다.기저귀 차고 떠난 젖먹이와둥개둥개 한 몸이 된다.때도 없이 어리광 부리고떼쓰기와 삐치기와 사탕을 좋아한다.아예 똥오줌도 못 가리는갓난아기로 돌아간다.그래서 영혼은모두 다 동갑내기 벗이 된다.■한국어의 띄어쓰기 규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어와 단어 사이는 띄어 쓰되,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고 어미는 어간에 더하여 쓴다가 그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단은 앞에 놓인 말이 하나의 단어인지 아닌지를 몰라서 그럴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남의나이'는 얼핏 보면 '남', '-의', '나이' 이렇게 세 단어들이고 따라서 조사 '-의'를 '남'에 붙여 써서 '남의 나이'라고 표기해야 할 듯하지만, 실은 '환갑이 지난 뒤의 나이를 이르는 말로 대체로 팔순 이상을 가리키는' 하나의 단어다. 좀 쌀쌀맞게 적자면 시는 오로지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말 속에 시의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시인은 시를 전할 따름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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