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 민간인이 된 지도 2년 가까이 돼 갑니다. 검사로 28년을 포함해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민간인으로 생활하면서 공무원 시절에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었던가 새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컨대 은행이나 관공서 출입이나 서류 작성 등 공무원 시절에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해왔던 일들을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어느 선배가 해 준 민간인으로서의 생활 팁 중 재미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게 되면 뒷자리에 앉지 말고 가급적 앞자리에 앉으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택시에서 내리면서 "수고했습니다"라고만 말하고, 요금을 내지 않게 되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민간인(변호사)으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주위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공무원 때가 좋았습니까? 아니면 공직 이후의 생활이 좋습니까?"입니다.  답은 둘 중 하나입니다. '직무상 스트레스가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을지라도 정년까지는 신분 보장이 되고, 주위에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이점이 있다는 것', '공직자 신분에서 벗어나면 주위에 온통 사기꾼들만 득실거리는 줄은 예전엔 몰랐을 것'이라는 게 공무원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반면, 민간인(자연인)이 된 게 더 좋다는 근거는 '시간 활용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좋다'는 등일 것입니다. (변호사나 사업 등의 수완을 발휘해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경우는 더더욱) '내가 왜 진즉 공직에 미련을 두고 그리 오래 집착했을까, 오히려 더 일찍 민간인이 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라고까지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검사는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무원에 비해 많은 은전과 행운을 가진 '빚진 자'들입니다. 예전에는 검사로 있다가 변호사로 활동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소위 '전관예우'의 특혜가 점차 사라지는 세태 변화에 따라 검사 출신 변호사의 경제력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저하된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검사 때 보다 변호사로 전직할 경우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질까 두려워서 보직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검사직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위에서도 검사로서 아무리 수모를 받는(?) 보직에 있더라도 참고 공직에 머물러 있으라는 충고를 많이 듣게 되는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더럽고 치사해도 벽에 X칠할 때까지 버티는 게 최선이다"라는 말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검사의 경우도 현직이 더 좋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이 사실입니다.  "공무원일 때가 좋으냐, 민간인일 때가 좋으냐"라는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쁨이 없다", "둘 다 똑같이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며 '세상이 이렇게 험한 줄 몰랐다'고 답한다면 공직 생활을 잘못한 것입니다. 공직 후에 알게 될 일을 공직에 있을 때 몰랐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공무원 때는 뭘 잘 모르고 잘못된 생각과 자세를 가졌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 공직 이후의 생활이 더 좋다고 한다면 역시 공직 생활을 잘못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으로 재직 시에는 공직을 하찮은 것으로 보고 살았음을 자인하는 셈이며 공직 이후의 사는 자세로 공직을 수행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재직 때와 공직 이후 삶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한 아이의 정답은 "엄마도 아빠도 똑같이 다 좋아"입니다. 어느 위치에 있던 당당하고 최선을 다하는 직업인이라면 공무원이든 아니든 "똑같은 자세로 살겠습니다"가 정답입니다.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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