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의 책과의 수다] 가르치려 들고 듣지 않으려는 남성들여성 혐오와 맞닿는 현실 꼬집어전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페미니즘'침묵 깬 여성들에 행동나서라 조언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정치에 몸담은 여자들은 외모, 목소리, 야심, 전업주부로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는 점 (혹은 가족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비난받는다…. 날카롭다거나 나댄다는 표현은 대체로 여자들에게 쓰인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2017년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인 '페미니즘'은 세계적 흐름에 한 발 뒤처진 이슈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구상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과 논쟁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또 주목받고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주목을 받는다는 것과 그것이 사회에 진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된장녀'에서 '맘충'으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지목하는 혐오가 짙어지고,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왁싱숍 여사장 살인사건'과 같은 범죄가 단순한 '묻지마 살인'이 아닌 '여성혐오 범죄'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침묵해 왔던 수많은 '82년생 김지영'들이 비로소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리베카 솔닛은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The Mother of All Questions)'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계속돼 온 서구사회의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혐오 살인 등을 얘기한다. 모두 예전부터 있어 온 말이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이 책 속에 언급된 상당히 많은 사건들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아주 흡사하게 겹친다. 2015년 발생한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이 우리 주변의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처럼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나를 깔본다"며 대학 캠퍼스에서 무려 6명의 여성을 살해한 아일라비스타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한국의 여성들이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듯 미국에서는 '#yesallwomes(여자들은 다 겪는다)'라는 문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됐다. 우리 문단과 예술계 성폭력에 대한 잇따른 고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남녀 임금 격차와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등에 대한 공론화는 비단 우리 사회만 끌어안고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솔닛은 "새로운 인식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여성 개개인이 남모르게 겪고 있던 경험들을 묘사할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현상을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뭐가 잘못된 건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불쾌하거나 위협을 느낀 상황에서도 겉으로 드러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여성들이, 사실은 여기 이런 이런 일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조목조목 짚어주자 비로소 "아, 나도 같은 일을 겪었는데"라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 것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1만5000원.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침묵을 강요 받으며 간간이 익명에 기대 목소리를 내던 여성들이 이제는 온라인에서, 혹은 거리로 뛰쳐나와 스스로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 스스로가 입을 열어 말하고, 그 목소리에 또 다른 여성들이 귀를 기울이고, 부당한 점을 개선하라며 당당히 요구하고 싸울 수 있는 것, 그것이 지금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분석한다.솔닛은 전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여성이 다 아는 내용을 거들먹거리며 설명해주는 남성을 뜻하는 '맨스플레인('man'과 'explain'의 합성어)'이란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자꾸 일축하는 남자들, 그것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맞닿아 있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자들이 말할 차례다. 여자라서 받게 되는 질문들, 이를 테면 여성 작가를 앞에 두고 그녀가 집필한 책들에 대해 논하기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캐묻는 질문은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남자에게는 굳이 묻지도 않았을, 그리고 정답조차 필요 없는 질문에 대해 '여자는 반드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한다'라든가 '여자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은 이러이러하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여성을 한 개인이 아닌, 가정을 돌봐야 하는 표본으로 취급하는 흔적이다. 그래서 솔닛은 우리 사회 '여성 혐오'에 대한 대응으로 "사안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그녀는 최근 국내 언론에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들이 낯설고 기이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고 친숙하다"고 고백했다.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 나아가 적대감까지 드러내고 있는 데 대해서는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가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뜻"이라며 "반발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페미니스트들의 일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옹호한다.자, 이제 침묵을 깬 여성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저자는 여성들이 예술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놓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독립과 자유의 기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 아니, 남성들이 여성의 이야기까지 가로채 자신들이 대신 말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페미니즘이 활기를 되찾고 젊은 여성들이 '신세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는 지금, 여성들은 오랜 역사를 거슬러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기 위한 싸움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물결에 합류할 것인가, 이대로 흘려보낼 것인가 하는 선택 또한 당신의 몫이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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