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계란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우리나라에는 난생(卵生)신화가 많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가락국(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가 대표적이다. 고구려는 닭을 숭배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닭은 다산과 부활을 상징하는 길조로 여겨졌다.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은 대표적인 명당터다.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를 뜻하는데, 마을이나 묘를 이런 곳에 조성하면 길(吉)하다고들 한다.지난 일주일은 '에그포비아(계란의 공포)'의 시간이었다. 지난 14일 일부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이름도 생소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란 살충제다. 이튿날인 15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를 공식 발표했다. 곧바로 전국 모든 양계농장의 계란 출하가 중단됐다. 대형 마트에서는 계란 판매를 멈췄다. 이후 플루페녹수론, 에톡사졸, 피리다벤 등의 살충제를 사용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지난 21일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49개 농장의 계란 451만개를 압류했고, 농가로 반품된 243만개를 폐기했다. 35만개는 빵, 훈제계란 등 형태로 이미 가공돼 유통됐다. 최성락 식약처 차장은 "피프로닐에 최대로 오염된 달걀을 성인이 하루 126개까지 먹어도 괜찮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무조건 안심하고 섭취해도 될 상황은 아니다"며 살충제 계란을 장기적으로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 계란 등 식품안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은 고대 철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생명과 세상이 어떻게 시작됐는가라는 의문이자, 인과관계에서 선후를 따지기 어려운 딜레마를 의미한다. 많은 사회현상과 여러 관계는 이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뫼비우스의 띠도 마찬가지다. 돌고 돌아도 제 자리다. 사회적 문제들도 한 두 정책으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책을 내놓아도 몇 년 지나면 도루묵이다.살충제 계란 파동을 불러온 연결고리는 단순하다. 더 많은 계란을 생산하기 위한 일부 농장주와 살충제 판매업자의 욕심,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공무원이 그 중심에 있다. '농피아(농식품부+마피아)', '수의사마피아(수의사+마피아)' 등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와 유착 논란은 구제역, 조류독감(AI) 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해결방법도 간단하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면 확실하게 벌을 주면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가위로 띠를 싹둑 잘라야 한다. 콜럼부스는 달걀을 세우기 위해 껍질이 부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껍질이 '적폐'다.조영주 경제부 차장 yjc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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