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외면하는 '지하철역 수유실'…위생관리 엉망

전자레인지 속 이물질 등 위생관리 엉망·위치 찾기 어려워 불편도입 10년된 서울시내 88곳…한 곳당 하루평균 이용인원 1.6명 불과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수유실에 놓인 전자레인지 내부 바닥이 이물질로 뒤덮여 있다.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금보령 기자] 1일 오후 주부 신은주(34·가명)씨는 아기 수유를 위해 서울지하철 2호선 사당역 수유실을 찾았다. 아기용 침대, 기저귀 갈이대, 소파 등이 놓여 있어 겉보기엔 다른 수유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분유나 이유식 등을 데울 때 쓰는 전자레인지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전자레인지 바닥에 이물질이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어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음식물을 데우고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주(1~7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가 지정한 세계모유수유주간이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각 지방자치단체나 공공시설에 수유공간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서울 내 지하철역(1~8호선)에도 10년 전부터 수유실이 도입돼 현재 지하철역 3곳당 한 곳 꼴로 총 88개 수유실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위생 상태가 나쁘고 청소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지하철역 수유실 한 곳당 하루 평균 이용 인원은 1.6명(서울교통공사 자료)에 불과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있는 수유실 내부. 전자레인지 문이 소파에 가로막혀 있다.

또 대부분 수유실이 역무실이나 고객센터 안쪽에 있어 위치를 찾기 어렵고 이용하기가 부담스럽다. 같은 날 기자가 5·8호선 환승역 천호역 수유실에 앉아 있을 때 남성 직원이 "여기 왜 닫혀 있어"라고 말하며 수유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기도 했다. 다행히 칸막이가 있어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실제 모유 수유 중이거나 유축 중이었다면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칸막이가 없는 수유실의 경우엔 안에 이용자가 있을 때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용 중'이라는 팻말을 문에 걸어놓는데, 그동안 누군가는 밖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역무실과 떨어져 있는 수유실은 평소 잠겨 있어서 벨을 눌러 직원을 부른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일부 역에서는 벨을 두세 번 눌러야 직원의 응답이 있었다. 에어컨, 선풍기 등도 모두 전원을 켜지 않은 상태여서 내부 온도는 30도에 육박했고 하루살이 같은 벌레들이 날아 다녔다. 불도 직접 켜고 들어가야 했다. 성북구에 사는 김모(32·여)씨는 "당연히 있는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벨을 누르고 직원이 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괜히 부른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며 "지저분한 내부 시설을 보고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지하철역 수유실 설치의 근거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2조 제7항과 시행령 제11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수유실 관리 규정이나 위생 기준 등은 전무하다.우윤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대표발의한 수유실 위생 관리 기준에 관한 법률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수유실에 구비돼 있는 포트가 녹이 슬어 있다.

서울지하철의 경우도 자체적으로 1일 점검표를 만들어 전자레인지, 세면기, 거울, 휴지통, 냉난방 등 항목들을 점검하지만 역부족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수유실로 설계해 만든 게 아니라 역무실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라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며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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