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남행(南行) / 전영관

 꽃은 무릎으로 봐야지 고개 들게 만드는 벚꽃 말고 민들레나 제비꽃은 무릎으로 만나야지 귀퉁이에 의붓자식처럼 주저앉아 버짐 핀 노랑을 보면 갈잎을 밀치며 올라오는 보라색 표정을 보면 등신이라 핀잔하고 싶은 것이다 저 잘난 벚꽃을 반이라도 닮을 일이지  청산도행 여객선 이물에 서 있으련다 꼭 있어야만 하겠다는 것들로 보퉁이 여미고 입도(立島)하는 노인네들 안색에서 벚꽃 아닌 민들레 제비꽃을 볼 수 있겠다  봄이 설렘이라는 거짓말은 누가 유통시켰나 설탕물 같은 약속은 또 누가 마셔 버렸나 먹던 떡 같은 노인네들 이마의 주름이나 세면서 내리겠다  못 먹고 자란 장남처럼 키 작은 소나무 허리께를 얼굴 잊은 동창생 되어 만져 보겠다 두어 걸음마다 민들레 제비꽃 들여다보느라 무릎 구부릴 걸 짐작한다면 엽서 따위는 기다리지 말아라 
 무릎을 꿇어야 그제야 환히 보이는 게 있다. 민들레가 그렇고 제비꽃이 그렇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패랭이, 별꽃, 괭이밥, 새우풀, 천인국, 바람꽃이 그렇고, 강아지풀, 코스모스, 국화, 처녀치마, 현호색, 나도나물, 보풀, 그리고 저 수많은 들꽃과 들풀들이 대개 그렇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마음만이 아니라 정말 몸을 구부리고 낮추어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 그런 꽃들, 그런 풀들이 이 세상에 지천이다. 지천인 만큼 실은 그런 꽃들과 풀들이 이 세계의 주인인 것이다. 사람 또한 그렇지 않은가. 등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저 깊은 주름들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를 숙여 공손히 절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도토리들을 따라 깔깔 굴러다니는 꼬마들의 새근거리는 숨결을 듣기 위해서는 그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보이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열린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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