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쟁 숨은 주역 할아버지 업적 기리는 손녀 최성주씨
최운산 장군
최성주씨
일제 하 무력 독립항쟁사에서 최대 승전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이 두 전투에 대한 기록에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의 이름이 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 뒤에는 숨은 주역 ‘최운산’(1885~1945)이라는 인물이 가려져 있다. 만주 일대에 흩어져 투쟁하던 독립군들이 1920년 북로독군부라는 이름의 독립군 사령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함으로써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의 기반을 마련한 이가 바로 최운산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다. ‘최운산 장군’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 창립식을 가진 최운산기념사업회에는 학계, 시민사회, 언론계 인사 5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 사업회가 창립되기까지는 할아버지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작업을 벌여온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성주씨(59)의 노력이 컸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씨지만 주변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봉오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 할아버지는 그에게 자랑스러운, 그러나 ‘비운의 영웅’이었다. “할아버지의 삶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언젠가는 역사학자들이 찾아서 밝혀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휘어진 역사의 기록이 다시 바로 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더군요.” 최씨의 할아버지 최운산은 1885년 지린성 연길현 국자가(지금의 연길)에서 태어났다. 청의 군대에서 간부를 지내기도 한 최운산은 농지 경영과 공장 운영, 곡물무역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무장독립전쟁을 하려면 독립군의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고 보고 대종교 지도자 서일 총재와 함께 뒷날 청산리 전투의 주축이었던 북로군정서 창설을 주도했다. 최운산은 봉오동 서북쪽 서대파 일대 자신의 소유지를 독립군 주둔지로 내주고 단기군사학교인 군사연성소를 설립, 운영을 지원했다. 또 소련에서 구입해온 신식무기로 사병들을 무장시켰다. 최씨는 “몇 천 명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왜 봉오동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서 생활했는지, 일본 정규군에 대적해 전쟁을 치러낼 수 있는 물적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독립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그 당시 간도지역의 사회상은 어땠는지 등을 살펴보면 할아버지의 역할과 행적이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운산은 1923~45년에 여섯 차례 투옥과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산은 대부분 군자금으로 소진했다. 최운산이 사망한 것은 광복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45년 7월5일이었다. 최성주씨에 따르면 최운산은 죽음이 임박해오자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일생 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고 의롭게 살고자 했으니 부끄러움이 없다. 시대가 격변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해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너희 형제들이 지금은 모두 고초를 겪고 있지만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염려 말라”고 유언했다.최운산은 1977년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그런데 서훈 과정에선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최씨는 “애초 독립유공자 서훈이 결정된 것은 1961년이었는데 당시 서훈 업무를 맡았던 총무처 직원이 아버지(최운산의 장남)에게 뒷돈을 요구했고, 이에 격분한 아버지가 주먹을 날려 서훈이 취소됐어요.”결국 나중에 최운산의 부인 김성녀씨가 1969년 진정서를 내고서야 서훈이 받아들여졌다. 최씨는 경실련, 언론인권센터를 거쳐 현재 생명미디어센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해 왔다. 그가 이렇게 시민운동을 해 온 것에도 “할아버지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6월에 봉오동을 다녀왔다. 봉오동에는 최운산의 형으로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최진동 장군의 외손자인 고종 6촌 오빠가 살고 있다. 최씨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평양 비행장 근처 야산에 모시고 나중에 묘소를 봉오동으로 옮기려 했지만 전쟁이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10월에 봉오동을 찾아 그곳의 증조부 묘 아래에 할아버지의 비석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명재 편집위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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