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

-32도가 넘는 때이른 폭염에 쪽방촌 거주민들 고통 심각-창문 없는 쪽방의 경우 환기가 잘 안돼 곰팡이 슬기도-쪽방 거주민 "달리 방법이 있나...그냥 버틸 수밖에"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거주민이 더위에 못이겨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우린 더워도 그냥 참아요. 버티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때이른 폭염으로 전국이 찜통으로 변해버린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길을 지나던 최모(여·75)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둘이 산다고 했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은 최씨의 집은 그동안의 세월이 느껴지듯 벽면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최씨는 "집 안이 덥지만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남자들 밖에 없어 잘 가지 않는다"며 "쪽방 거주민 중에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많은데 그분들에 비하면 난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살고 있는 3층 건물에는 층마다 쪽방 4~5개가 붙어있었다. 대부분 입구 말고는 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되지 않았다. 복도에 열린 문 사이로는 1평 남짓한 방에 누워 연신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지하 쪽방은 상황이 더욱 열악해 내려가는 계단부터 습한 더위가 물씬 느껴졌다.건물 앞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던 60대 A씨는 "아직까지 밤에는 시원해서 괜찮지만 지금처럼 뜨거운 낮에는 집안에 있기가 힘들다"며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원이나 동자희망나눔센터 등 주변 무더위쉼터를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싫어 잘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쪽방촌의 한 건물 2층에 여러개의 방이 붙어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따르면 갈월동과 동자동 근처 쪽방촌에는 70여개 건물에 1200여명이 살고 있다. 최씨처럼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95% 이상은 혼자 산다. 주로 50~60대가 많고 열악한 환경 탓에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돼 타인과 교류를 잘 맺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집에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서울은 낮 최고기온 32도에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등 나흘 째 찜통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80대 B씨는 하루종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그의 집 문 앞에는 전동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1평 남짓한 쪽방은 각종 생활용품으로 가득 차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창문이 없어 출입구를 열어 놓지 않으면 사우나처럼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B씨는 "몸이 안 좋아서 더워도 양말을 신고 있어야 한다"며 "방송사에서도 오고 인터뷰도 했지만 우리 생활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햇빛이 가장 뜨거웠던 오후 1~2시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비교적 고요했다. 쪽방촌 가운데 있는 공원에는 선교를 나온 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퍼졌지만 쪽방 골목길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원에서 만난 어르신은 "저녁에 해가 져야 사람들이 많이들 나온다"고 귀뜸했다.
그나마 방에 선풍기나 창문이 있으면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5년 째 동자동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김모(60)씨는 "창문이 있는 방도 있지만 좀 더 비싸다"며 "환기가 안 돼 곰팡이가 슬어도 이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날씨에는 방에 있기도 힘들어 건물 앞 의자에서 한참 앉아 있거나 종로 쪽 공원으로 가기도 한다"고 했다.일부 어르신은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기도 했다. 50대 C씨는 더위에 지쳐 윗옷을 벗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더위가 빨리 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매 여름이면 똑같이 너무 힘들다"며 "에어콘이 있나 선풍기가 있나, 그냥 여름이 지나갈 때까지 잘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호수로 등목을 한 뒤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서울역쪽방상담소나 무더위쉼터가 있어도 쪽방거주민들을 모두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쪽방촌 거주민도 많을 뿐더러 열악한 시설을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힘든 탓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폭염에 대비해 건강이 안 좋은 쪽방거주민은 매일 방문 관리를 한다"며 "창문을 만들거나 선풍기를 지원하는 사업도 수시로 하고 있다"고 했다.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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