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한국의 워렌 버핏을 꿈꾸는 대학생이 있었다. 주식 투자가 하고 싶어서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투자 동아리 친구들의 돈을 모아서 펀드도 출범시켰다. 옷 살 돈으로 옷 만드는 회사 주식을 한 주 더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 1년 내내 똑같은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가격이 올랐을 때 팔아서 세계적인 거부가 된 워렌 버핏처럼 가치 투자를 하고 싶었다. 가치투자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라는 책을 내고, ‘대학경제신문’도 창간했다. 취업 대신 투자동아리에서 활동한 친구와 함께 투자 자문사를 설립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투자동아리에서 주식 투자를 한 게 전부인 대학생 2명이 창업한 투자자문사가 VIP투자자문이다. 밤낮으로 주식만 생각하는 대학생 ‘주식덕후’가 이 회사의 최준철(40·사진) 공동대표이다. 2003년 8월 설립된 VIP투자자문은 운용자산이 1조80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상위권 투자자문사로 성장했다. 창업 후 누적수익률은 500%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이 이 회사에 2억5000만 달러(약3000억 원)를 맡겨 금융투자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GPFG는 10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자랑하는 세계 2위 연기금이다. 한국의 워렌 버핏을 꿈꾸는 최 대표는 투자하는 종목도 워렌 버핏처럼 생활 속에서 골라낸다.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 주식으로 대박을 냈다면 VIP 투자자문은 동서를 발굴해 대박을 냈다. 동서는 국내 인스턴트 커피의 강자인 동서식품의 모회사이다. 최 대표는 “동서의 자회사인 동서식품은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갖고 있고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는 절대 강자였지만 우리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2001년에는 주가가 2500원 정도에 불과했다”면서 “처음 투자한 이후 주가가 10배 정도 올랐는데 단기간에 오른 게 아니고 10년 동안 천천히 올랐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회사 설립 이듬해인 2004년부터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조선 관련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관련 기업을 탐방하면서 발품을 판 결과, 조선업이 호황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주가에는 반영이 안 돼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때 싼 가격에 산 주식은 2007년 조선업 바람을 타고 폭등했고, VIP투자자문은 자문사 중에서 수익률 1위에 올랐다. 승승장구하던 VIP투자자문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속절없이 추락했다. 주가가 떨어지자 남은 현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들였지만 한 번의 반등 없이 떨어지기만 했다. 주가가 하락하자 가격이 떨어지는 주식을 끝까지 사들여 역전승을 거둔 과거의 경험이 독이 됐다. 2009년 3월 시장은 다시 반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 일 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팔아치운 은행, 건설, 조선, 자동차, 철강 등 경기 민감주는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간 반면, 수익률 하락을 막기 위해 갈아탄 경기방어주는 시장의 상승세를 쫓아가지 못했다. 2년 연속 헛다리를 짚자 투자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격한 항의와 함께 환매가 이어지면서 2007년 2000억 원이 넘었던 운용자산규모가 1년 남짓 만에 1000억 원대 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최 대표는 투자 스타일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재검토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투자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워렌 버핏이 하는 것처럼 다른 회사가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성장성이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기준에 따라 고른 종목이 롯데삼강, 동원산업, 아모레퍼시픽의 지주회사였던 태평양(현 아모레G) 등이다. 시장 평균을 능가하는 수익률을 기록하자 고액 자산가와 기관의 돈이 몰렸고 2014년 말 운용자산 규모가 2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최 대표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이다. 특히 중국의 인터넷 시장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산업에 역동성이 있고,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과점시장으로 재편되는 게 매력적인 요소라고 한다. VIP투자자문은 투자자문사로는 드물게 2012년 홍콩에 사무소를 열고 아시아 시장 투자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 대표는 “여러 군데 투자를 하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우리가 경쟁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성장 가능성이 높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서 기업 탐방하기에도 좋기 때문에 우리가 투자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꿈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오래 하는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은데 국내 증시에서 싼 주식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국내 투자만 갖고 오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다”면서 “죽기 전까지 기업을 분석하고 가치 투자하기에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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