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휴가의 공식 실종 사건'...올 여름휴가의 새로운 트렌드는 '5無'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유제훈 기자, 원다라 기자] 여름 휴가시즌이 시작됐다. 휴가를 보내는 스타일은 천양지차다. 유치원이나 초중고 방학에 맞춰 일제히 떠나던 휴가 방정식도 이제는 크게 바뀌었다. 특히 올해 여름 휴가의 특징은 '5무(無)'로 요약된다.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 한 유형으로 떠올랐다. '7말8초'라는 기간 장벽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조용히 방 안에 박혀 지내기도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ㆍ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영세 중소기업ㆍ자영업자 등은 아예 휴가 자체가 없다. ▲"나를 없앤다"= 스테이케이션은 새로운 유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달 초 발표된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자료에서는 이 같은 세태가 드러난다. 만 19세 이상 성인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꼭 여행을 가야 한다(43.1%)는 시각보다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51.7%)는 의견이 좀 더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정한 휴가는 '여행'이 아니라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평소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휴가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대기업 연구원 임진용(31)씨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임씨는 사찰에서 운영하는 순수 휴식형 템플스테이로 이번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에선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각자 주어진 방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임씨는 "직장에서 상사와 계속해서 갈등을 겪다보니 심신이 많이 지친 것 같다"며 "산사(山寺) 안에 누워 책을 읽다 잠들거나, 이따금 산책 정도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회사에 근무하는 이지은(29ㆍ여)씨도 스테이케이션을 선택했다. 이씨는 "딱히 다른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올해 여름은 '멍 때리기'를 충분히 할 생각"이라며 "휴가기간 동안 밀린 드라마나 몰아보기 하며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줄긴 했지만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OECD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기력을 잃은 이들이 휴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 연중 휴가! = 7~8월이 여름휴가 시즌이라는 통념은 깨진지 오래다. 금융회사 직원인 육모(33)씨는 여름 휴가를 9월에 갈 계획이다. 당분간 계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육씨는 "비성수기인 9월쯤 해외를 가면, 항공권이나 숙박권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여유롭다"며 "주변에서도 여름엔 하루 이틀 정도 바닷가를 찾고, 휴가는 9~10월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잡지사 직원 박모(40)씨는 이미 지난 5월 연차를 내고 2주간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즐긴 박씨는 "비수기인 덕분에 숙소와 비행기 요금이 성수기의 3분의1에 지나지 않아 부담이 적었다"며 "더운 한여름에는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게 최고의 피서"라고 말했다.
오토캠핑을 즐기는 가족[자료사진=현대차]
▲인적 없는 곳을 찾아서=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직장인 최지원(28)씨는 올해 여행지로 일본 고치현(高知縣)을 선택했다. 도쿄ㆍ오사카ㆍ교토ㆍ오키나와ㆍ후쿠오카 등 주요 관광지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적은 데다, 일본만의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유명 관광지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여행 기분이 들지 않는다"며 "한적한 곳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중견 기업에 다니는 오모(43)씨는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 농막에서 가족들과 일주일 휴가를 보낼 계획이다. 스마트폰도 갖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에 지쳤다'는 느낌 때문이다. 오 씨는 "무엇을 하며 일주일을 버틸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면서 "아이들에게 밤하늘의 수많은 별도 구경시켜주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쉬는 데 '공식'은 없다= 여름 휴가 때만 되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가족ㆍ친구들과 함께 산과 바다, 계곡을 찾거나 해외 여행을 떠나는 고전적 휴가 문화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각자의 방식대로 도시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취미ㆍ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통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정희영(30ㆍ여)씨가 대표적이다. 수차례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그는 이번 8월 여름휴가를 방송국이나 콘서트장에서 보내기로 했다. 유명 아이돌 그룹 I와 함께 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더운 날 번잡스런 피서지로 가고싶지 않다"며 "도심 속에서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대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청년단체 회원 박모(38세)씨는 8월 초 평소 꿈꾸던 사회활동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다. 박씨는 "직장 다니느라 평소 생각을 실천하지 못했다"며 "올해는 여행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휴가 자체가 없다= 여름휴가가 '그림의 떡'인 사람들도 적지않다. 1년차 새내기 직장인 정은혜(29ㆍ여)씨는 얼마 전 상사에게 넌지시 휴가계획이 있냐고 물었다가 "땅 파서 일하냐"는 식으로 반응해 4년째 휴가를 포기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수도권 한 공단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44)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어렵고 해서 회사 분위기가 안 좋기 때문에 여름 휴가를 대놓고 쓰는 사람은 없다"며 "하루 정도 금요일 연차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주말에 집 가까운 계곡이나 야영장 다녀 오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에게도 여름 휴가는 남의 일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4ㆍ16연대 상근 간사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휴가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23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단식에 함께하고 있는 시민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로 타격을 받은 관광업ㆍ자영업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의 발길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명동의 자영업자 김모씨는 "손님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여름 휴가를 포기했다. 대신 가을 쯤 가족들과 3박4일 정도 여행을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의 관광 활성화 정책과 함께 관광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대기업ㆍ중견기업을 중심으로 휴가철인 7~8월 이외에도 1~2주씩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늘고 있다"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떠나는 오지여행이나 모험여행 등 특수한 형태의 휴식이 인기를 모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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