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정당해산, 민주주의 기본원리 지켰나…헌재 “사회적 낙인과 소모적 이념공세 안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19일 오전 10시36분 헌법재판소 앞 풍경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한민국 헌법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고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민주주의는 죽었다”면서 울분을 감추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 결정이 가져온 풍경이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인용을 결정했다. 통진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도 결정했다. 통진당 정당해산에 찬성한 입장에서는 흡족한 결과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정당해산 인용을 결정했으니 결과도 압도적이다. 그러나 통진당 정당해산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이들은 헌재 결론에 깊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헌재가 권력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헌법정신을 스스로 위반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정당해산 기각 결정을 한 헌법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 단 한명이다. 헌재가 한쪽으로 기운 편향된 현실을 보며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결과는 나왔지만 ‘진짜 대립’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당해산 결정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위원장 고영주)는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의원 등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 전체를 1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소속 의원은 물론 당원들도 검찰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안통치의 먹구름을 몰고 올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 결정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우리는 통진당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 이념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경계한다”면서 “일반 당원들, 통진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은 다른 정당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 공세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당해산 결정이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인 이념대립으로 흐르면 후폭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헌재가 밝힌 것처럼 ‘소모적 이념논쟁’은 한국사회에 부담만 안겨줄 뿐이다. ‘사회통합’ 다짐했던 헌법재판소장 헌재 결정으로 통진당 정당해산 논란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갈등의 불씨를 새로 지핀 꼴이다. 이는 헌재의 기본적 사명과 거리가 먼 결과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와 사회 통합을 이룩하고 합리적 토론과 소통을 위한 '공론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헌재소장이 밝힌 헌재의 존재이유다. 헌재는 한국 사법역사에 기록될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 심판을 선고했다. 결정문만 347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하지만 결정문의 ‘품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법을 기초로 한 판단의 기본은 감정을 배제한 탄탄한 논거이다.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결정했다면 이를 뒷받침한 논리적 근거가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헌법학자와 정치학자, 법조계가 머리를 맞대고 헌재결정의 법리적 정당성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준도 나와 있다. 헌재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의 중요성을 이번 ‘결정문’에 담았다.
19일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을 결정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당사의 문이 닫혀 있다.
헌재가 결정문에 담은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바로 이러한 내용이다. <div class="break_mod">“오늘날 입헌적 민주주의에서는 원칙적으로 다수의 정치적 의사가 존중돼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의사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무력화돼도 안 된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수파에 가담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러한 사회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민주주의는 정치의 본질이 지배나 군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동등한 자유, 그리고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에 있는 것이다.”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전제로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존중하고 자율적인 정치적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 공동체의 올바른 정치적 의사형성으로 이어진다는 신뢰가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 원리의 근본 바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