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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이게 말이야, 방구야."인터넷과 방송 등에서 유행어가 되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영어로는 비논리적이라는 'You're begging the question'정도로 해석된다. 논점을 교묘히 회피하다는 의미다. 최근 KB금융의 일부 사외이사들이 보여준 언행을 보면서 생각난 말이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은 며칠 전 서울 명동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났다. 이날 이사회는 윤종규 KB금융 신임 회장 후보를 새 대표이사 내정자로 최종 승인하기 위해 이경재 의장을 포함해 9명의 사외이사가 전원 참석했다. 사외이사들이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KB금융에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동안 각종 금융사고와 조직 내홍을 심하게 겪었던 KB금융이 새로 뽑힌 최고경영자를 통해 드디어 추락한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고 경영정상화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완벽하지는 않았다.금융권의 핫이슈인 KB금융 사태의 주요 원인은 관치금융과 지배구조의 문제점이다.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점도 KB금융 사태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다.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서 사외이사들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번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책임론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완전히 빗나갔다. KB금융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나선 사외이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외이사들 대부분은 거취를 묻는 질문에 입을 닫았다. 일부 사외이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거취를 묻자 이경재 의장은 "거취는 무슨 거취냐"며 "아무 계획이 없다"고 말을 잘랐다. 다른 사외이사는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게 KB금융의 LIG손보 인수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고 질문하자 "그 것(LIG손보 인수)과 그 것(사외이사 거취)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내년 3월이면 9명의 사외이사 중 6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 때까지 사외이사들이 사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사직에 미련은 없지만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려하는 건 무슨 마음일까. 자리에 대한 욕심인가 아니면 KB금융 사태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금융회사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와 이사회 등이 제도의 본래 취지대로 작동할 필요가 있다. 방관자적 태도를 보인 사외이사들에게는 강력하게 책임을 묻고 정기적으로 재신임 평가를 해야 한다. 사외이사로서의 책임감과 자질이 없는 사람들은 평가를 통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또 전문성 강화를 위해 지금처럼 학계에 편중된 것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KB금융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특히 이사회 운영 시스템에 대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윤종규 내정자는 이사회 주관 아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사회 운영 체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사외이사들로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현재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 주관 아래 TF에서 운영 체계가 새롭게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무리일까?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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