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벤치마크가 사라진 시대

삼성전자가 비상경영체제에 본격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분기에 10조 영업이익을 내던 회사가 돌연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마트 폰' 이후의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작업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애플과 함께 IT업계 세계 1위로 등극한 삼성전자가 치러야 할 당연한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1위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따라가야 할 '벤치마크'가 없다는 얘기다. 차후 중국에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넘겨주고 애플이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창출해 냈듯 고부가가치 신제품으로 멀찌감치 앞서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세계 1위 삼성전자의 고민이다. 세계 일등기업 반열에 진입한 우리나라 주요 업체들도 같은 도전에 부딪히고 있어 이런 고민이 비단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현대차는 가솔린엔진 이후의 차세대 자동차에, 포스코는 철강 이후의 철강 제품에, 현대중공업은 혁신적인 해상운송시스템 개발에 사운이 달려 있다. 또 석유화학산업에서 물류, 의료, 건설, 한류산업까지 어제의 성공 공식이 내일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우리경제가 어쩔 수 없이(?) '창조경제'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일부 특수 분야를 빼고는 따라가기만 하면 웬만큼 먹고 살았던 시대가 끝났다. 심지어 선진국과 비교해 후진성을 논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금융업도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사실상 지향해야 할 '선망의' 선진금융기법이나 선진금융회사는 없음을 깨닫고 있다. 대규모 모럴 해저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수준의 위험한 투기 등이 선진금융업의 '맨 얼굴'임이 그 나라 관계당국이 밝힌 내용들이다. 우리가 한때 금과옥조처럼 '베끼고' 싶었던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목표는 안타깝게도 수정돼야 한다.증권시장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성장주와 가치주 혹은 경기순환을 따라 움직였던 소위 테마주 시대가 반복되기는 힘들다. 우선 성장시대가 사실상 끝났고 주요 기업의 해외 매출이 70~80% 되는 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창조적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힌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정부의 개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환율이나 금리로 거시경제를 예측하고 증시 움직임을 예측하는 톱다운(Top Down) 투자방식으로는 시장을 앞서 나가기 힘들다. 결국 투자의 벤치마크도 사라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나 일반 투자가나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도,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다. 그저 시장 따라 눈치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최근 배당주 투자 붐이 대표적이다. 사실 주식투자는 근원적으로 배당 수익을 목적으로 한다. 덤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투자자들이 이를 마치 테마주로 접근할 정도로 시장에는 마땅한 벤치마크가 없는 실정이다. 성공적인 사업가와 성공적인 투자가는 공통적인 데가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로 간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다수의 재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모방전략 이후의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투자가들이 늘 실망스러운 결과에 좌절하는 이유도 자기만의 투자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코스피 2000포인트 진입 이후 증시에 대해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또 재테크에 대한 각종 비법이 소개된다. 그러나 그것이 내 재산을 책임져 줄 수 없다. 자신이 상품을 선별할 능력을 키우지 않는 한 어떠한 전문가의 충고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모르면 차라리 저금리라도 고정금리 상품이 그나마 소중한 재산을 보존하는 최선책이다. 투자는 아는 것만큼 수확하는 정직한 게임이다.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