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 땡볕이면 문턱이 닳았던 극장 출입을 올해는 그만 둘까보다. 아니면 선풍기 바람에 배 깔고 누워 세월아 네월아 즐겼던 추리소설을 고만 접을까. 시절이 하 수상하니, 지키지도 못할 시덥잖은 결심이 꼼지락댄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사방팔방이 미스터리요, 소설 책을 펴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수수께끼다. 당췌 돈 쓸 일이 없다. 영화 1만원, 소설책 2만원, 도합 3만원을 아꼈으니 하 수상한 이 시절에 고맙다고 넙죽 절이라도 할까. 아니, 세상이 스펙터클 버라이어티 장르여서 현기증을 유발하니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하나. 숫제 사회가 미적분의 난해한 물음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잠적 40여일 만에 이뤄진 유병언의 깜짝 귀환은 숱한 말말말을 남긴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흔히 '음모(또는 음모론)'라고 부른다. 무릇 음모가 창궐할 때는 양파처럼 까고 털고 벗겨줘야 마땅하고, 또한 뒤탈이 없다. 우선은 그가 타살당했는지 자살했는지 아니면 자연사했는지 아리송하다. 도피자금 수십억원도 산새가 물고 갔는지 들쥐가 꿀꺽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더욱 이해불가인 것은, 그의 몸뚱이가 바람과 시간에 사그라지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다섯 번이나 그의 실명을 언급하며 '조속한 체포'를 주문했고, 그때마다 검찰은 '꼬리를 잡았다'고 호언장담했으며, 촌로들은 의병처럼 들고 일어나 반상회에서 눈을 부라렸으니 '죽은 유가 산 우리를 농락한' 꼴이다. 대한민국 치안이 겨우 이 정도인가, 탄식하다가 불현듯 뜬금없이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남긴 명대사 "대한민국은 말이야, 두 발로 몇발짝 뛰다보면 다 밟혀. 땅덩어리가 요만 하거든. 그래서 옛말에 대한민국 형사들은 두 발로 수사를 한다 그러는 거야…"가 오버랩된다. 아니, 그러면 우리 검경은 그동안 입으로만 수사를 했단 말인가, 허탈하다가도 다시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또 다른 난수표로 다가온다. 이 와중에 헬기가 추락하고 기차가 충돌해서 귀한 생명을 잃었으니…. 음모론은 사회의 위기 상황이나 혼란이 극심할 때 많이 유포된다, 고 위키백과는 풀이한다. 작금의 사태가 '보이지 않는 손'의 음모인지, 실체가 없는 그저 그런 음모론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키백과 진찰대로라면 우리는 위기와 혼란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신뢰와 염치가 무너지면서 상식과 도덕마저 몽롱해지는 것이다. 의심과 불신이라는 폭우가 급습한 오늘은, 가슴 저리는 세월호 참사 100일이다.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2부 이정일 기자 jay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