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시인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출간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 '식구'는 유병록이 고등학교 때 쓴 작품이다. 유병록은 2010년 등단, 이번에 첫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창비시선)를 내놨다.등단 당시 시인은 '시선의 깊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 서둘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묘사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시들도 산뜻한 감각이 주목할 만하다. 시인은 첫 시집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균열”에 숨결을 불어넣는 “대지의 상상력”(손택수(문학평론가))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딱, 뚜껑을 따듯/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 붉은 피가 고인다//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갈퀴를 젓는다/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곧 바닥날 안간힘/오리는 고무 대야의 벽을 타고 돈다//(…)//오래 쓴 연필처럼 뭉뚝한 부리가 붉은 호수에 떠 있는 흰 병을 바라본다/한때는 제 몸통이었던 물체를/붉은 잉크처럼 쏟아지는 내용물을 바라본다//목 아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발 담갔던 호수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오리는/목이 마르다/흰 병은 바닥난 듯 잠잠하지만/기울이면 그래도 몇모금의 붉은 잉크가 더 쏟아질 것이다."('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부분)유병록의 시는 시적 대상을 육화(肉化)시키는 솜씨가 볼만 하다. 여기서 살아 있는 ‘몸’의 기능을 수행하는, 생동감 넘치는 언어를 읽을 수 있다. “붉게 익어가는/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개의 심장”('붉은 달'), “땅에 묻힌 자가 팔을 내밀 듯/피어나는 꽃” “부러지는 손가락처럼/뚝뚝/꽃잎 질 때”('완력'), “굽이를 지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 뼈가 부서지고 체온이 탈출한다 살점이 공중으로 튀어오른다”('중력의 세계')에서 보 듯 사물과 현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풍경은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지며 사물은 더욱 선명해진다."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두부는 식어간다/이미 여러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두부를 만진다/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두부' 부분)이같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들은 육화된 관계와 함께 삶의 무게를 견딘다. 그러는 동안 사과 한알이 둘로 쪼개지는 틈새에도 “검은 피가 흐르고 흰 뼈가 돋아”('검은 피 흰 뼈')나는 존재들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로 쪼개진다//부풀어오르면 균열이 많아지고 반경이 넓어지면 경계가 길어지는/팽창의 역사가 증명해온 습성//커다랄수록 쉽게 쪼개진다 쉽게 둘이 된다//지척이었던 거리 아득해진다//(…)//쪼개진 단면은 붉게 변해 서로 낯선 얼굴을 한다//비애가 탄생하고 죄와 용서가 분리된다//바다를 사이에 둔 대륙처럼 멀어지고 서로를 모방하는 표정이 실패할 때//이쪽 기슭의 눈먼 벌레들이 더이상 저쪽의 시간으로 건너가지 못할 때//사이에 부는 바람에도 균열이 인다."('사과' 부분)유병록의 시는 진부하고 어설픈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빈약한 사유를 얼버무리지 않는다. 시인은 섬세한 감각으로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종잇조각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읽어내고 “검은 뼈가 자라듯 글자가 새겨지던 순간”과 “뼈를 부러뜨리고 온몸에 상처를 남긴 완력”('구겨지고 나서야')을 본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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