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브라질의 수도였던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도시를 '리오데자네이로'라고 배웠다.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지던 시대에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 서해안까지 항로를 개척한 인물을 '바스코 다가마'라고 외운 것은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기존에 사람이 살고 있던 땅을 발견했다는 유럽 중심 사고를 바로잡아, 이제는 '지리상의 발견' 대신 '대항해 시대'라고 한다. 고교 시절 간혹 TV 드라마에서인지 "마카오에 배만 들어오면…"하는 허세 혹은 농담에 쓰이는 비유를 들었다. 해방 이후 미국 군정청이 대외무역을 처음 허용한 지역이 마카오였다. 이후 마카오에서 옷감, 신문용지, 생고무 등이 수입됐고 이 유행어가 생겼다. 마카오에서 수입된 옷감으로 맞춘 양복을 입은 사람은 '마카오 신사'가 됐다. '리오데자네이로' '바스코 다가마' '마카오'에 대한 의심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루이스 피구'라는 포르투갈 축구선수를 보면서 싹텄다. 윙어 포지션을 맡아 현란하고 정교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치고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던 피구는 2000년대 초반 세계 4대 미드필더로 꼽혔다. 그의 유니폼 등에 'Figo'라고 찍혀 있는데 '피구'라고 읽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o'를 '우'로 발음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그 이후 '바스코 다가마'가 아니라 '바스쿠 다가마'요, '마카오'는 그 지역 사람들이 '마카우'라고 발음하는 지명을 잘못 읽은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씩 깨달았다. 마카우는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이 청나라로부터 조차한 다음 식민지로 편입했다. '리오데자네이로'의 제 이름을 알게 된 실마리도 축구 선수가 줬다.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브라질의 호나우두 선수를 'Ronaldo'라고 쓰는 것이었다. 그러니 'Rio'는 '리오'가 아니라 '히우'였다. 인터넷 덕분에 브라질 사람들은 이 도시를 '히우지자네이루'라고 부른다는 걸 배웠다. 스포츠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흡인력과 전파력이 크다. 브라질 작가 '주제 사라마구'라는 이름과 그 이름을 'Jose Saramago'라고 쓴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접했다. 국제적인 스포츠대회에서는 세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다. 내 관심은 이름에 그쳤지만, 소치 동계 올림픽을 즐기면서 동시에 여러 나라와 문화도 배울 수 있을 듯하다.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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