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3장 떠나가는 사람들(225)

“밤새 게임에 몰두하던 사람이 화려한 카지노장의 문을 나설 때 벌겋게 핏발 선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떨까요? 새벽 안개에 젖은 더러운 풍경들, 파산한 채 일 푼도 없이 여기저기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인간 군상들.... 사랑의 마법에서 풀려난 순간,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그보다 그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요?”그녀는 하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치 따지기라도 하듯 말했다. 아마 그것은 하림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몰랐다.“사실 난 그게 두려워요. 사랑과 집착.... 난 그 차이를 모르겠어요. ”그래. 그녀 말대로 사랑과 집착은 어쩌면 종이 한 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집착이 없다면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한낱 가식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지독한 사랑은 중독된 것 같은 지독한 집착에 의해 그 길고 험한 길을 가능케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무서운 집착. 비록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가 그의 열정을 감히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게 두렵다면.... 아무도 사랑을 할 수가 없지 않을까요?”하림은 조심스럽게 이의를 달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지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예요! 뜻을 같이 하고 생각을 같이 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는 계속 말했다.“장선생님은 내가 그 남자, 죄송해요, 운학 이장이란 과연 어울릴 거라 생각하세요? 그래요. 나는 아직 그런 사랑 따위는 해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지만 앞으로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내겐 죄송합니다만, 남자랑 여자랑 결혼하여 사는 게 혐오스럽게 느껴질 뿐이니까요. 사실은 나도 예전에 멋모르고 어떤 남자랑 사귄 적이 있어요. 결혼까지 갈 뻔 했지요. 나랑 같은 신학교 선배였어요. 하지만.....”그녀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그 분은 신부가 되었기 위해 떠났고, 나는 혼자가 되었죠. 그때부터 난 혼자 살기로 결심을 했어요. 기도원을 짓겠다는 것도 그런 나의 소망이 들어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이상한 광기에 젖어 있었다. 금세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하림은 그런 그녀를 외면한 채 시선을 방바닥에다 던져두었다. 어쩌면 그녀로서는 자신의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두고 있었던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바다 속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난 곧 이곳을 떠날 거예요.”이윽고 그녀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예.....?”하림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나도 곧, 이곳, 이 골짜기를 떠날 거라구요.”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해주듯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나 느닷없는 말이었다. 하림은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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