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나라는 16세기 말부터 쇠락의 조짐을 보였지만 그 수명을 연장하거나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그건 특히 원숭환이라는 당대의 명장에 힘입은 바 컸는데, 제갈량과 악비의 현신이라 불릴 만큼 지략과 절의가 뛰어난 이 인물은 홀로 후금의 침입을 막아내며 필사적으로 나라를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마는데, 그를 없애지 않고선 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본 후금의 간계에 명의 황제가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온몸을 잘라내어 죽이는 능지형을 당했다. 그후 명은 급격히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1644년 명 왕조 최후의 날, 자금성으로 밀려드는 후금의 군대 앞에 황제 숭정제는 위급을 알리는 종을 직접 울렸지만 그를 구하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단 한 명의 환관만이 이 가련한 황제가 스스로 목을 매는 것을 도왔다. 그런데 이 숭정제에 대해서는 뜻밖의 면모가 있었는데, 그건 그가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검소함에 대해서는 곤룡포 안에 입은 옷의 해진 소매가 삐져나오자 이를 밀어넣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게다가 그는 정사에 매우 부지런했으며 세심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를 어떤 군주로 평가해야 할까? 우리는 여기서 군주의 역할, 지도자의 소임과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그는 돈 몇 푼은 아꼈으나 나라의 근간을 잃었다. 그는 검소했지만 실은 탕진했다. 세심했지만 실은 어두웠던 것이며, 부지런했지만 실은 태만했다. 모든 일에 본말이 있다고 할 때 그는 말(末)을 얻었으나 본(本)을 잃었고, 그것이 나라의 멸망을 불렀다. 숭정제에게서 본 것처럼 그의 품성을 더욱 빛낼 수도 있었을 품성과 미덕들은 가장 중요한 것의 결여로 인해 오히려 나라의 재앙이 되고 말았다. 어떤 공적인 인물에 대해 우리는 '인간적인' 미덕으로 칭송하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히틀러조차 매우 소박하며 따뜻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 애쓴 어느 전직 대통령이 이를 생생한 예로 보여주듯 지도자의 개인적인 미덕은 이처럼 이중적인 것이다. 명나라는 만리장성을 증축해 견고한 방벽을 쌓았다. 그러나 만리장성으로도 군주의 소임을 제대로 이해 못한 군주로 인한 화를 피하진 못했다. 이것이 단지 옛 명나라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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