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중산층의 품격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금융위기에 이은 재정위기로 세계 각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지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다. 중산층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기도 하고,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하였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가구(중위소득)'에 비해 소득이 50~150% 계층'이라고 정의한다. 다소 광범위하긴 하지만 이 기준을 적용하면 월 182만~546만원을 버는 가구를 우리나라의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중산층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중간지대에 있기 때문에 사회의 다원화에 기여한다. 적당한 소득을 가진 중산층은 절제 있는 소비와 합리적 생활양식으로 건전한 민주사회 형성에 기여한다. 중산층이 튼튼하게 형성돼 있으면 경제성장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통합의 기반을 형성한다. 중산층의 비중이 높을수록 정치적 안정성, 투명성이 높아지며 이해집단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더구나 중산층의 경제력이 큰 사회일수록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지고 경제성장도 촉진된다는 것이다.  OECD 기준의 우리나라 중산층은 지난 20년 동안 75.4%에서 64%로 줄었다. 단지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산층에 대한 객관적 기준과 주관적 기준의 격차에 있다. 지난 3월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4%가 연수익 7000만원 이상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답변했다. 어느 연봉 사이트에서 조사한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더욱 높다. 첫째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둘째 월 급여는 500만원 이상, 셋째 2000㏄급 중형차 소유, 넷째 예금액 잔고 1억원 이상,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1년에 한 차례 이상 할 수 있어야 한단다.  기준의 차이 만큼 중산층의 비율도 차이가 난다. 통계청에서는 우리나라 중산층이 64%라고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6%에 불과하다. 두 숫자의 차이가 한국 중산층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중산층의 몰락을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한다. 하나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가진 양극화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임금격차가 크고 저임금 근로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25.6%에 달한다. 중소기업 및 서비스업의 임금수준이 대기업 및 수출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은 데다 비정규직 및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이 높아 중산층의 경제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산층의 처분가능소득 중 과도한 주거 및 교육비용 때문이다. '절제 있는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집값이 오를 것에 대비해 감당하기 힘든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하우스푸어', 자녀 교육비에 지나친 지출을 퍼붓는 '에듀푸어'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다. 하우스푸어와 에듀푸어는 노후대책이 없는 '실버푸어'로 이어진다.  요즘 인터넷에서 세계 각국의 중산층을 비교하는 글이 떠돌고 있어 화제다.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할 수 있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공분을 느낄 수 있으며,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중산층 기준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ㆍ불평ㆍ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등이다. 우리로서는 부러운 '중산층의 품격'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기준을 모두 충족한 '중산층의 확대'이길 바란다.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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