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女 축구, 졌지만 잘 싸웠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졌지만 잘 싸웠다.” 20세 이하 여자 축구 대표선수들을 향한 말이다. 일본전 패배에 대한 위로가 아니다. 여자 축구는 미래가 있었고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한국은 지난달 30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2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8강전에서 일본에 1-3으로 져 2연속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직전 대회인 2010 독일 대회 8강전에서 멕시코를 3-1로 꺾고 두 번째 출전 만에 4강에 안착했다. 준결승전에서 대회 우승국인 독일에 1-5로 졌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콜롬비아를 1-0으로 꺾었다. 이어 열린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한국은 득점 1위 여민지의 맹활약에 힘입어 일본과의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겨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여민지를 비롯해 2012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상당수는 2년 전 17세 이하 대회 우승 멤버다. 성인 연령대가 아닌 20세 이하 각급 청소년대회의 성적은 들쭉날쭉한 편이다. 어느 해에 해당 나이 대 우수 선수가 몰려서 배출되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는 다른 종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야구의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정민철, 박재홍 등은 ‘92 학번 세대’로 불린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리그의 수준을 한층 높이거나 해외로 진출,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였다.물론 특정 국가, 특정 종목의 강세는 어느 정도 유지된다. 이번 대회 우승은 미국-나이지리아, 독일-일본의 4강 싸움으로 좁혀졌는데 여자 축구 강국 미국은 창설 대회인 2002 캐나다 대회와 2008 칠레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다. 유럽 여자 축구의 강호 독일은 2004 태국 대회 그리고 앞서 언급한 2010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전까지 5차례 열린 대회에서 미국과 독일 외에 우승한 나라는 2006 러시아 대회의 북한뿐이다.

(사진=정재훈 기자)

나이지리아는 2010 독일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2011 여자 월드컵에서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여자 축구강국 일본은 20세 이하 대회와는 큰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2 대회에서 8강에 올랐으나 2004 대회와 2006 대회에선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2008년 대회에서 일본은 다시 한 번 8강에 올랐다. 그러나 2010 대회에선 조별 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4일 준결승에서 독일과 만나는 일본이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주된 이유다.FIFA 랭킹은 특정 나라의 축구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8월 현재 이번 대회 4강의 랭킹은 미국이 1위, 독일이 2위, 일본이 3위, 나이지리아가 27위다. 한국은 15위다. 11위인 북한에 이어 아시아 3위다. 19위인 중국을 따돌렸다.1990년대 쑨원을 앞세워 미국과 세계 여자 축구를 양분했던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기세가 많이 꺾였다. 1999년 미국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던 중국은 2003 미국대회와 2007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잇따라 4강 진출에 실패하더니 2011 독일대회에서는 북한과 호주, 일본에 밀려 본선에도 나서지 못했다. 중국 여자 축구에서 다시 한 번 알 수 있지만 스포츠에서 영원한 강자란 없다. 한국 여자 축구의 발전 과정은 눈부시다. 1940년대 후반 잠시 얼굴을 보였던 여자 축구는 이후 오랜 기간 자취를 감췄다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도입기에 있었던 “시아버지 제사상 걷어찰 일 있냐”라는 말은 40여년의 공백기 동안 “여자도 축구를 하나”라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여민지(사진=대한축구협회)

궁금증은 국내 방송사의 선구적인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 MBC 문화방송은 1970년 소련-멕시코의 개막전부터 브라질-이탈리아의 결승전까지 멕시코 월드컵 모든 경기를 생중계 또는 녹화 중계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MBC는 1971년 멕시코에서 열린 ‘비공식 여자 월드컵’도 녹화 중계했다. 이 무렵 이탈리아에서도 ‘비공식 여자 월드컵’이 개최되는 등 여자 축구는 유럽과 남미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 가고 있었다. 6개국이 겨룬 ‘비공식 멕시코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덴마크는 멕시코를 3-0으로 이겼는데, 경기가 열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는 무려 11만 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1년여 전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4-1로 꺾고 우승한 월드컵 결승 때와 같은 수의 관중이었다. MBC의 노력에 힘입어 1972년 봄 전주에선 여자 축구단이 만들어졌다.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있어 국내 여자 축구의 명맥은 그나마 이어질 수 있었다.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의 도움 요청을 받고 급조된 대표팀을 파견하면서 되살아난 여자 축구는 20여년 만에 아시아 3강 수준으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팀부터 실업 팀까지 몽땅 더해 봐야 60여 팀밖에 되지 않는 얇은 선수층으로 만들어 낸 기적과 같은 결과다. “오늘 경험을 더 크게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라고 밝힌 여민지의 한일전 소감은 한국 여자 축구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메시지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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