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지킨 나라에서 공부해 꿈만 같아요”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바르뷸라, 달레작전에 참가, 손녀딸 캐서린은 한남대서 한국어 공부

한남대 사범대 앞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한 루비아노그루트 씨 가족. 왼쪽부터 언니 제니퍼, 아버지 마리오, 캐서린.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할아버지가 너무나 오고 싶어했던 한국에서 공부를 해 꿈만 같아요.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콜롬비아에서 온 스무살 금발머리 유학생 캐서린 루비아노그루트의 꿈이다. 캐서린은 지난 3월 초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와 대전 한남대 한국어학당을 다니고 있다. 캐서린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나 한국에 올 때까지 외국여행 한 번 안 했다. 남미 명문대 하베리아나대학교 외교학과(International Relations) 1학년인 캐서린이 한국유학을 결심한 배경엔 그의 할아버지가 자리하고 있다.그의 가문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캐서린의 할아버지 에드먼드 루비아노그루트(당시 34살) 육군 대위는 본국에서 두 번째 파견대에 편성, 유엔참전군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같은 해 9월 소령으로 진급한 그는 작전명 ▲‘바르뷸라(barbula, 턱수염)’ ▲‘달레(Dale, 멋대로 해라)’ ▲‘불모고지(不毛高地, Old Baldy)’ 전투 등의 작전에 참여해 치열한 전장을 누볐다.에드먼드 씨는 이듬해인 1953년 콜롬비아로 무사히 돌아가 계속해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196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한국 땅을 한번 밟고 싶어했으나 1987년 6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나라를 다시 찾지 못했다. 캐서린은 “아버지께 할아버지는 타고난 군인이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비롯해 삼촌들까지 모두 군인이 되신 걸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서린의 아버지인 마리오 씨는 해군 대위로, 두 명의 삼촌은 각각 공군 소장과 공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캐서린의 할아버지 애드먼드루비아노그루트의 6.25전쟁 참전 때 모습.

6월25일 한국전쟁일에 맞춰 캐서린의 아버지 마리오씨와 언니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마리오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아버지 에드먼드가 전쟁을 치른 곳을 가볼 계획을 세웠다.할아버지와 한국의 인연은 캐서린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남대가 만든 ‘한남 유엔(UN)장학금’ 덕이다.한남대는 6·25전쟁 때 군사지원국과 의료지원국으로 참전한 21개국의 주한대사들이 추천하는 학생을 해마다 2명씩 뽑아 유학시키고 있다.뽑힌 학생은 한국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 수업을 받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통과한 뒤 학부생으로 입학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학생에게는 4년간 장학금이 주어진다. 캐서린은 학부(정치외교학과)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한남대는 교내 사범대학 남쪽 잔디밭에 6·25전쟁에 참전한 21개 나라의 국기게양대를 세우고 ‘유엔기념공원’을 만들었다. 유엔의 헌신적 도움을 기념하고 재학생들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는 뜻에서다.한남대는 기념공원을 만든 뒤 참전국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금도 만들었다. 지난해 인도에서 온 아코마린(24·기계공학과 2학년), 태국서 온 차나칸막폰(21·국어국문과 1년)이 첫 UN장학생이다.한남대 한국어학당엔 캐서린과 함께 오롱간 가드(필리핀) 등 4명이 ‘한남 유엔장학금’ 혜택을 받아 공부하고 있다.김형태 한남대 총장은 “유엔참전국의 후손들이 한남대에서 공부를 하도록 돕는 일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신뢰와 감사를 전하는 뜻이 있다”고 말했다.이영철 기자 panpanyz@<ⓒ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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