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군대 내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이 은폐됐다면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유가족이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적용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이창형 부장판사)는 군복무 중 자살한 서모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47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재판부는 "군 내부에서 이루어진 불법행위를 민간인이 인식하기란 원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2009년 군의문사위원회의 진상규명결정을 통해 자살원인이 부대 내 가혹행위로 밝혀지기 전까지 유가족들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결정이 내려짐으로써 비로소 자살원인이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 등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이미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소멸했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전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못한 점, 군대 복무 기간, 당시 부대 내에서 이루어졌던 폭행 정도 등을 참작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2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1986년 해병으로 자원입대한 서씨는 전차병으로 차출돼 교육받을 당시부터 허리와 어깨통증을 호소했으나, 의무대 엑스레이 촬영 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부대 내에서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엑스레이 촬영장비의 성능은 허리디스크가 있었다 하더라도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였다. 서씨는 취침시간, 저녁시간, 일요일 등 일주일에 서너차례 이상 동기들과 함께 탄약고나 내무반 뒷편 산비탈 동굴로 불려가 선임병으로부터 주먹이나 발로 가슴을 폭행당했으며, 서씨만 따로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서씨는 전입한 지 약 한 달 만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부대에서는 서씨의 동기에게 "조사받을 때 구타 등 내부 부조리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라"고 강요했으며, 유가족의 입회 하에서 시체를 확인하고 부검 여부 등을 결정하는 통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족들의 양해나 동의 없이 사체를 백령도에서 인천시립병원으로 이송해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20여년이 흐른 2008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서씨가 허리디스크의 고통으로 인해 정상적인 군복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부대원들의 집단따돌림, 인격적 모욕과 질타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된다"고 결정했으며, 이후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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